비 오는 아침 출근길이었어요. 앞에 노란 장화를 신은 아이가 걷고 있었지요.
아이는 웅덩이가 보일 때마다 두 발로 뛰어들었어요. 첨벙, 첨벙. 물이 튈 때마다 깔깔 웃었네요. 그 뒤를 엄마가 우산을 들고 따라가고 계셨어요.
엄마는 아이를 말리지 않으셨어요.
대신 우산을 아이 쪽으로 기울여 들고 계셨지요. 자기 어깨가 젖는 것도 모르시는 것 같았어요. 아이는 신이 나서 다음 웅덩이를 찾았고요. 그 장면을 보며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네요.
어릴 때 저도 노란 장화가 있었어요.
할머니가 사주신 거였지요. 비 오는 날만 기다렸어요. 그 장화를 신을 수 있으니까요. 학교 가는 길 웅덩이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밟았어요. 집에 오면 양말이 다 젖어 있었고요. 엄마는 웃으며 수건을 건네주셨지요.
웅덩이를 피해 걷는 어른이 되었어도, 첨벙 소리를 기억하는 마음은 어딘가 남아 있다.
지금은 웅덩이를 피해 걸어요.
구두가 젖을까 봐서요. 출근길에 물이 튀면 하루 종일 찝찝하니까요. 웅덩이는 이제 놀이가 아니라 피해야 할 장애물이 됐지요. 그게 조금 쓸쓸했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그날 회사 근처에서 작은 웅덩이 하나를 봤어요.
아주 얕은 거였지요. 주변을 살짝 둘러보고 한 발을 살며시 넣어봤어요. 첨벙, 하는 소리가 작게 났어요. 구두 앞코가 조금 젖었지만 웃음이 났네요. 어릴 적 그 소리 같았거든요.
생각해보면 제가 비를 좋아하게 된 건 그 장화 때문인지도 몰라요.
비 오는 날이 즐거운 날이라는 기억이 몸에 남아 있는 거지요.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비 오는 날 창가가 편한 거겠지요.
쇼펜하우어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현재를 잘 누린다고 했대요.
웅덩이에 뛰어들던 그 아이가 딱 그랬어요. 내일 걱정 없이 지금 이 웅덩이만 보고 있었으니까 그랬겠지요.
웅덩이를 피해 걷는 어른이 되었어도 그 첨벙 소리를 기억하는 마음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비 오는 날 한 번쯤은 작은 웅덩이 하나를 밟아봐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