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밤에 이불 속에서 빗소리 재생 버튼을 눌렀어요. 그런데 소리가 이상하게 두 겹으로 들리더라고요.
창밖에 진짜 비가 오고 있었네요. 습관처럼 누르느라 밖을 볼 생각도 안 한 거였어요.
방이 너무 조용하면 잠이 잘 안 와요.
시계 초침 소리, 냉장고가 멈췄다 도는 소리, 윗집 발소리까지 하나하나 귀에 걸리지요. 그러다 보면 머릿속 생각도 같이 커지더라고요. 오늘 했던 말, 내일 해야 할 일 같은 게요.
빗소리를 틀면 그 작은 소리들이 한데 덮여요.
어디서 뭐가 나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는 거지요. 고르게 떨어지는 소리라서 귀가 붙잡을 데가 없고요. 붙잡을 게 없으니까 생각도 조금씩 풀어지더라고요.
고른 소리는 귀를 쉬게 하고, 귀가 쉬면 생각도 따라 눕는다.
파도 소리나 모닥불 소리도 들어봤어요.
그런데 저한테는 빗소리가 제일 맞더라고요. 어릴 때 비 오는 날 할머니 댁 마루에서 낮잠을 자던 기억이 있어요.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지요. 몸이 그걸 기억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한때는 이게 좀 걱정됐어요.
소리 없이는 못 자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 싶었지요. 그런데 누구나 잠들 때 뭔가에 기대잖아요. 좋아하는 베개, 익숙한 이불 냄새, 옆에서 나는 숨소리 같은 거요. 제게는 그게 빗소리인 거군요.
그날 밤엔 재생을 끄고 진짜 빗소리만 들었어요.
녹음된 소리보다 조금 불규칙했어요. 가끔 세게 쏟아지다가 잦아들고, 어딘가 홈통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섞였지요. 그 불규칙함이 오히려 살아 있는 소리 같아서 좋더라고요. 그러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들었네요.
잠들기 어려운 밤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그럴 때 곁에 둘 소리 하나쯤 있으면 조금 덜 외로운 것 같아요. 고치려 애쓰기보다 나한테 맞는 소리를 찾아두는 쪽이 편하더라고요. 오늘 밤 창밖에 비가 오면, 재생 버튼은 잠깐 쉬게 해도 되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