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는 창이 흐려져요. 안팎의 온도가 다르니 그렇겠지요.
손가락으로 한 번 지워봤는데 그 자리가 금방 다시 흐려지더라고요.
한 번 닦으면 잠깐은 밖이 보이네요.
그런데 몇 분이면 원래대로 돌아오고요. 닦는 쪽이 지는 싸움인걸요. 그래서 요즘은 그냥 둡니다.
유리가 흐려지는 것은 바깥이 차서가 아니라 안이 따뜻해서다.
다 보이는 창이 늘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밖이 흐리게 보이면 마음도 좀 느슨해지고요. 형체만 지나가는 걸 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갑니다.
지운 자리에는 자국이 남더라고요.
다음 날 다시 흐려지면 그 자국이 먼저 드러나고요. 전에 뭘 그렸는지가 그렇게 다시 보이는 게 좀 묘하네요.
물기가 마르는 순서도 정해져 있어요.
위쪽이 먼저 마르고 아래쪽에 고이더라고요. 아래에 모인 건 한참 남아 있고요.
닦고 나면 손끝이 차가워지네요.
유리가 그만큼 차다는 뜻이겠지요. 안에 있으면 잘 모르는 걸 손으로 알게 되고요.
낮보다 밤에 더 뿌옇더라고요.
밖이 더 식어서 그런 모양이고요. 그래서 밤에는 창이 거울처럼 되어 제 얼굴이 비칩니다. 밖을 보려다 저를 보게 되는 거지요.
이제는 닦지 않고 둬요.
어차피 다시 맺히고요. 흐린 대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비가 며칠 이어지면 창이 마를 새가 없네요.
닦아도 반나절이면 돌아오고요. 그런 날은 방 안이 더 축축하게 느껴집니다. 빨래가 잘 안 마르는 것도 그때고요. 그러니 창만 그런 게 아니라 집 전체가 그런 거지요.
지워도 다시 맺히는 건 안이 따뜻하다는 뜻인걸요.
그러니 창이 뿌옇다고 서둘러 닦지 않으셔도 되고요. 오늘 비가 오면, 한 번 손가락으로 그려보셔도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