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이상하게 마음이 아래로 내려앉는 걸 느끼는 사람이 많네요. 특별히 슬픈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가라앉네요.
저는 비 오는 날 이 창가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이라, 그 마음을 잘 알아요. 오늘은 그 가라앉음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해요.
흐린 날 마음이 처지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에요. 빛이 적어지고 소리가 낮아지는 날에는 몸도 마음도 자연스럽게 느려지는걸요. 온 세상이 볼륨을 줄인 것 같은 그런 날이잖아요.
그러니 비 오는 날 가라앉는 건 고장이 아니라 반응에 가까워요. 바깥이 흐리면 안도 흐려지는 거네요. 그걸 억지로 밝게 끌어올리려 하면 오히려 더 지치는걸요.
저는 언젠가부터 흐린 날에 억지로 기운을 내려 하지 않게 됐어요. 가라앉으면 가라앉는 대로, 그 낮은 자리에 잠깐 머물러요. 이상하게 저항을 멈추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라고요.
비를 없애려 애쓸 수는 없잖아요. 바꿀 수 없는 날씨를 미워하는 대신, 그냥 오늘은 흐린 날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네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흐린 날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느껴요. 맑은 날엔 바빠서 지나치던 마음들이, 비 오는 날 가라앉은 자리에서 문득 떠오르곤 하네요. 오래 미뤄둔 생각이나 못 챙긴 감정 같은 것들이요. 그런 걸 들여다보기엔 오히려 흐린 날이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가라앉는다는 건 어쩌면 밖으로 못 가는 만큼 안으로 깊어지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가라앉는 마음을 어떻게든 밀어내려 하기보다, 저는 그런 날엔 그냥 비를 봐요. 유리를 타고 내려가는 물줄기, 창을 두드리는 낮은 소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그 시간이, 의외로 마음을 가만히 가라앉혀 주더라고요.
비 오는 날 유독 가라앉는다면, 그 마음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도 돼요. 오늘은 저항하는 날이 아니라 잠시 흐려도 되는 날인걸요. 창가에 앉아 비를 바라보는 그 잠깐이, 흐린 하루를 견디는 작은 자리가 되어주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