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이 마음 일기를 보여줬거든. 숫자 없이 단어만 적는 그 수첩.
몇 달치를 넘겨봤어. "무서움", "흐물흐물", "답답함", "조금 괜찮음".
근데 마지막 페이지에 처음 보는 단어가 있었어.
"좋음."
칼손 이거 처음 써봤어.
그 옆에 이유가 하나 적혀 있었어. 칼손은 원래 이유 안 쓰는데.
"다 같이 고구마 먹음."
군고구마 할머니한테 고구마 사서 정류장 의자에 앉아 다섯 명이 나눠 먹었던 날이야.
계좌 얘기가 아니었어. 그냥 고구마.
칼손한테 물어봤어. 왜 그날이 좋음이었냐고.
칼손이 좀 생각하더니 그러더라. 그날 손이 따뜻했대. 고구마 때문에.
그리고 옆에 다들 있었대. 아무도 그 얘기 안 하고 고구마만 먹었대.
그 순간 갑자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대. 그래서 집에 가서 바로 적었대.
불나방 고구마가 칼손을 구했네.
칼손이 하나 더 말했어. 원래는 안 좋은 날만 적었대.
좋은 날은 적을 필요가 없는 줄 알았대. 좋으니까 그냥 지나가면 된다고.
근데 생각해보니까 안 좋은 날 일기를 넘겨볼 때 좋은 날이 하나도 없으면 더 힘들대.
그래서 이제 좋은 날도 적기로 했대. 안 좋은 날에 꺼내 보려고.
생각해보면 칼손의 첫 "좋음"이 고구마였다는 게 좋아.
큰일이 아니라 작은 거. 손이 따뜻했던 거, 옆에 친구가 있었던 거.
좋은 날은 생각보다 작은 데서 오는 거라니까. 근데 작아서 그냥 지나가니까 적어둬야 하는 거고.
돌부처 나도 "그냥" 말고 다른 거 써볼게.
너도 좋은 날이 있으면 한 줄 적어봐. 작은 거라도. 고구마라도.
나중에 안 좋은 날 꺼내 보면 힘이 될 거라니까. 칼손 수첩엔 이제 "좋음"이 하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