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노트북을 펴고 이력서를 썼어요. 경력란에 지금 회사에서 보낸 삼 년을 적었지요.
다 쓰고 보니 한 줄이었어요. 세어보니 스물두 자였네요. 그 안에 야근하던 밤들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어요.
이력서는 줄이는 일이에요.
몇 년의 시간을 몇 줄로, 몇 줄을 몇 단어로요. 회사 이름, 기간, 맡은 일. 그 세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덜어내야 하지요. 그런데 덜어내는 것들이 제게는 더 중요한 것들이었어요.
그 한 줄 사이에는 많은 날이 있었어요.
처음 출근해서 어리둥절하던 날, 큰 실수를 하고 화장실에서 숨을 고르던 날, 처음으로 칭찬받던 날이요. 탕비실에서 동료와 웃던 오후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력서에는 그런 걸 쓸 칸이 없지요.
이력서의 한 줄은, 그 줄 사이에 있던 수많은 날을 말없이 품고 있다.
쓰다 보니 기운이 빠졌어요.
남들 이력서는 화려해 보이는데 제 건 평범했지요. 특별한 성과도 없고 눈에 띄는 경력도 없었어요. 삼 년을 열심히 살았는데 내세울 게 이것뿐인가 싶었네요.
이직한 적 있는 친구에게 물어봤어요.
친구가 말하길, 이력서는 원래 다 평범해 보인대요. 면접관도 그걸 안다고요. 중요한 건 그 줄 사이에 있던 날들을 면접 때 얘기할 수 있는 거래요. 그 말을 듣고 수첩에 그 날들을 하나씩 적어봤어요.
적다 보니 꽤 많았어요.
어려웠던 일을 끝까지 해낸 날, 동료를 도와준 날, 새로운 걸 배운 날이요. 이력서에는 안 들어가지만 제가 지나온 시간이었지요. 그걸 적고 나니 조금 덜 막막해졌네요.
이력서 몇 줄에 다 안 담기는 시간이야말로 진짜 지나온 시간이겠지요.
남들은 몰라도, 그 줄 사이에 있던 날들을 스스로는 기억해줘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