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메시지를 쓰고 있었어요. 보고 싶다, 까지 쳐놓고 한참 화면을 봤지요.
결국 그걸 지우고 뭐 해, 로 바꿔 보냈네요. 친구도 그냥, 이라고만 답했고요. 대화는 거기서 멈췄어요.
보고 싶다는 말은 짧아요.
그런데 그 짧은 말을 먼저 하면 지는 것 같았지요. 연락이 뜸해진 게 누구 탓인지도 모르는데, 먼저 보고 싶다고 하면 제가 더 아쉬운 사람이 되는 것 같았어요. 그 기분이 싫었던 거군요.
자존심은 상처받지 않으려고 세운 담 같아요.
먼저 손을 내밀었다가 상대가 안 잡아주면 아프니까요. 그 아픔을 피하려고 아예 손을 안 내미는 거지요. 그러면 다치진 않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네요.
다치지 않으려고 삼킨 말은, 다치는 것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날 밤 누워서 생각했어요.
친구가 보낸 그냥, 이라는 짧은 답도 혹시 저처럼 뭔가를 지우고 보낸 말이었을까 하고요. 둘 다 같은 말을 삼키고 서로 짧은 말만 주고받은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렇다면 좀 우스운 일이겠지요.
쇼펜하우어가 고슴도치 얘기를 한 적이 있대요.
추운 날 고슴도치들이 서로 가까이 붙으려다 가시에 찔려 떨어지고, 추워서 다시 다가가길 반복한다는 얘기였지요. 결국 적당한 거리를 찾는다고요. 자존심도 그 가시 같은 거겠지요. 다가가고 싶은데 찔릴까 봐 멈추는 거요.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메시지 창을 열었어요.
이번엔 지우지 않고 보냈지요. 요즘 너 보고 싶더라, 하고요. 한참 뒤에 답이 왔어요. 나도, 어제 그 말 하려다 말았어. 그걸 읽고 혼자 한참 웃었네요.
그 주말에 친구를 만났어요.
몇 달 만인데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하더라고요. 먼저 말한 게 지는 게 아니었어요. 먼저 다가간 것뿐이었지요. 삼킨 말이 있다면 하나쯤은 꺼내보셔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