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복도에서 불나방을 봤는데 칼손 사물함 앞에서 뭘 하고 있더라.
사물함 틈으로 뭘 밀어 넣고 있었어. 종이 같은 거.
나를 보고 엄청 당황하더라.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도망갔어.
불나방 못 본 걸로 해.
점심때 칼손이 동아리방에 와서 종이를 하나 보여줬어. 사물함에 들어 있었대.
연습장을 찢은 종이였어. 거기에 불나방 글씨로 몇 줄이 적혀 있더라.
내용은 비밀이래. 근데 종이를 보니까 쓰다 지운 자국이 엄청 많았어. 쓴 글보다 지운 자국이 더 많을 정도로.
칼손이 그 종이를 소중하게 접어서 필통에 넣더라.
나중에 불나방한테 물어봤어. 왜 말로 안 하고 쪽지를 썼냐고. 매일 보는데.
불나방이 좀 쑥스러워하더니 그러더라. 말로 하면 장난처럼 될 것 같대.
자기는 늘 시끄럽고 장난만 치는 애잖아. 진지한 말을 해도 다들 장난인 줄 안대.
그래서 종이에 쓴 거래. 종이에 쓰면 장난이 아니라는 게 전해질 것 같아서.
칼손 쪽지 받고 진짜 놀랐어. 불나방이 이런 말 할 줄 몰랐거든.
그리고 지운 자국 얘기를 물어봤어. 왜 그렇게 많이 지웠냐고.
불나방이 그러더라. 쓸 때마다 너무 오글거리거나 너무 가벼워서 계속 지웠대.
딱 맞는 말을 찾으려고 한 시간 넘게 썼다 지웠다 했대.
그 지운 자국이 다 불나방 마음이었던 거야. 쓴 글보다 지운 게 더 진심일 수도 있는 거라니까.
생각해보면 쪽지는 말이랑 다르잖아. 말은 하고 나면 사라지는데 쪽지는 남아.
칼손은 안 좋은 날 그 쪽지를 꺼내 본대. 필통에 넣어두고.
그리고 말은 얼굴 보고 해야 하니까 어려운데, 쪽지는 혼자 쓰고 혼자 읽으니까 진짜 마음이 나오는 거야.
돌부처 나도 쪽지 받고 싶다.
돌부처가 그 말 하니까 다들 웃었어. 근데 다음 날 돌부처 사물함에도 쪽지가 들어 있었대.
너도 누구한테 말로 못 하는 게 있으면 종이에 써봐. 지운 자국 많아도 괜찮아.
그 자국까지 다 전해질 거라니까. 동아리방 애들 필통엔 그런 쪽지가 하나씩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