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방에 멀티탭이 두 개 있거든. 평소엔 반도 안 차.
근데 마감 전날만 되면 구멍이 하나도 안 남아. 노트북 충전기가 줄줄이 꽂혀 있더라.
그거 보면 알아. 아, 내일이 마감이구나.
불나방 난 원래 전날에 제일 잘 된다니까.
웃긴 건 그 과제를 다들 몇 주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거야. 갑자기 나온 게 아니잖아.
근데 그 몇 주 동안 뭘 했냐고 물으면 다들 대답을 못 하더라. 놀았던 것도 아니래.
계속 신경은 쓰였대. 하려고 몇 번 앉았대. 근데 시작을 못 했대.
그래서 칼손한테 물어봤거든. 걔가 제일 많이 미루는 애라서.
걔 말이 그랬어. 시작하면 내가 얼마나 못하는지 보이니까 무섭다고.
안 하고 있으면 잘할 수도 있는 사람으로 남잖아. 시작하는 순간 그게 없어지는 거고.
듣고 나니까 이게 게으른 거랑은 좀 다르더라.
칼손 막상 하면 금방인데 그 앞이 길어.
나는 듣다가 좀 놀랐어. 우리 방 애들이 계좌 안 여는 이유랑 완전 똑같았거든.
열면 확인해야 하고, 확인하면 핑계가 없어지니까. 그래서 안 여는 거잖아.
과제든 계좌든 마음이 하는 일은 같은 거라니까. 결과를 보는 게 무서워서 시작을 미루는 거야.
그래서 한번 해봤어. 마감 전날 말고 그 전주에 다 같이 모여서 딱 십 분만 하기.
제목만 쓰든 한 줄만 쓰든 상관없어. 시작만 하는 거야.
돌부처는 진짜 제목만 쓰고 덮었어. 근데 다음 날 혼자 이어서 하더라. 시작한 게 있으니까.
그 주 마감 전날엔 멀티탭 구멍이 두 개 남았어. 우리 방 기준으로는 기록이다.
너도 뭔가 미루고 있으면 그냥 십 분만 앉아봐. 잘하려고 하지 말고 시작만.
미루는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그런 거라니까. 동아리방은 마감 전날에도 안 닫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