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이 동아리방에 들어왔는데 인사를 안 했어. 그냥 소파 구석에 앉았어.
처음엔 피곤한가 보다 했어. 근데 저녁까지 거의 말을 안 했어.
불나방이 조용한 거 처음 봤거든. 다들 좀 이상하게 쳐다봤어.
칼손 불나방 오늘 왜 저래.
둘째 날도 똑같았어. 아니 더 조용했어.
과자도 안 먹고, 농담도 안 하고. 폰만 보다가 내려놓고, 또 보다가 내려놓고.
단톡방에 누가 뭘 물어보면 불나방 대답이 "ㅇ" 한 글자였어. 평소엔 이모티콘 다섯 개씩 보내는 애가.
다들 긴장했어. 돌부처보다 조용한 불나방이라니.
셋째 날에 다들 눈치를 봤어. 누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하나.
칼손은 무서워서 못 하겠대. 돌부처는 원래 말을 못 하고.
그래서 내가 갔어. 불나방 옆에 앉았어. 아무 말 안 하고.
한참 있다가 손바닥을 책상에 한 번 댔어. 우리 수신호. "같이 있어줘"가 아니라 "같이 있을게"라는 뜻으로.
불나방이 그 손바닥을 한참 보더니 입을 열었어.
요새 진짜 안 좋대. 근데 늘 웃기던 자기가 안 좋다고 하면 다들 놀랄 것 같아서 말을 못 하겠대.
웃기는 거 그만두니까 할 말이 없더래. 자기한테서 농담을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 것 같대.
불나방 나 원래 이렇게 재미없는 애야.
그 말 듣고 칼손이 다가왔어. 그리고 그랬어. 재미없어도 된다고. 우리는 재미있어서 같이 있는 거 아니라고.
돌부처도 와서 옆에 앉았어. 아무 말 없이.
불나방이 그제야 좀 웃었어. 작게. 사흘 만에 처음.
생각해보면 원래 조용한 애가 조용한 건 괜찮아. 근데 시끄러운 애가 조용해지면 그건 신호야.
그 애가 평소에 내던 소리가 사실은 버티는 소리였던 거라니까. 그게 멈췄다는 건 버틸 힘이 떨어졌다는 거고.
그럴 땐 옆에 가줘야 해. 재미없어도 된다고 말해주면서.
너도 주변에 갑자기 조용해진 시끄러운 친구가 있으면 옆에 한번 앉아봐. 아무 말 안 해도 돼.
그 친구가 다시 시끄러워질 때까지 기다려주면 된다니까. 넷째 날 불나방은 이모티콘 세 개를 보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