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이 작은 수첩을 하나 들고 다니거든. 일기장이래.
주식 일기냐고 물었더니 그렇대. 근데 펼쳐보니까 숫자가 하나도 없더라.
한 줄씩 단어만 있었어. "무서움." "답답함." "조금 괜찮음."
칼손 숫자는 안 적어. 마음만 적어.
왜 숫자를 안 적냐고 물어봤어. 주식 일기면 보통 숫자를 적잖아.
칼손이 그러더라. 숫자는 적어봤자 다시 볼 때 아프기만 하대.
근데 마음은 다시 봐도 괜찮대. 오히려 도움이 된대. 그때 내가 이랬구나, 하고 알게 된대.
숫자는 지나가면 그만인데 마음은 쌓이는 거라니까.
칼손이 한 페이지를 보여줬어. 위에서부터 세 줄이 있더라.
"무서움." "조금 무서움." "안 무서움."
날짜는 없었어. 근데 그 세 줄이 몇 주에 걸쳐 쓴 거래.
그거 보니까 좀 뭉클했어. 칼손이 무서움에서 안 무서움까지 걸어온 길이 한 페이지에 있는 거잖아.
불나방 나도 써볼까. 근데 나는 "신남"만 쓸 것 같아.
불나방이 그 뒤로 일기를 써봤대. 일주일.
근데 "신남"만 쓸 줄 알았는데 아니었대. "불안함"이 생각보다 많았대.
자기도 놀랐대. 늘 신나 있는 줄 알았는데 적어보니까 아니었던 거야.
그러니까 적는다는 건 내 마음을 처음으로 똑바로 보는 거더라. 머릿속에만 있을 땐 몰랐던 거.
칼손이 그러더라. 제일 안 좋은 날 그 일기를 다시 읽는대.
"무서움"이 "안 무서움"이 됐던 페이지를 보면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대.
계좌는 다시 봐도 위로가 안 되잖아. 근데 지난 마음은 위로가 되는 거야. 내가 버텼다는 증거니까.
돌부처 나는 한 단어만 써. "그냥."
돌부처 일기는 다 "그냥"이래. 다들 웃었는데 그것도 돌부처 마음인 거라니까.
너도 요새 마음이 복잡하면 숫자 말고 단어 하나만 적어봐. 하루 한 줄이면 돼.
나중에 다시 읽으면 네가 어디쯤 왔는지 보일 거야. 동아리방엔 그런 수첩이 세 권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