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옆 서랍에 얇은 일기장이 하나 있어요. 매일 밤 자기 전에 몇 줄씩 적지요.
얼마 전 석 달 전 페이지를 펼쳐봤어요. 오늘 너무 힘듦, 한 줄만 있고 뭐가 힘들었는지는 하나도 안 적혀 있더라고요.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기억이 안 났어요.
그렇게 힘들었던 날인데 석 달 만에 이유가 사라진 거지요. 처음엔 좀 허탈했네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게 오히려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날의 힘듦이 결국 지나갔다는 증거였으니까요.
일기를 쓴다고 하면 가끔 왜 쓰냐는 질문을 받아요.
누가 읽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다시 보지도 않는데 말이에요. 저도 딱 떨어지는 대답은 없어요. 다만 쓰고 나면 하루가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 있지요.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게 종이 위에 한 줄로 내려앉는 거겠지요.
적어두는 순간, 하루는 나를 지나가는 것에서 내가 지켜본 것이 된다.
처음엔 잘 쓰려고 했어요.
하루를 다 담으려고 길게 쓰다 보니 금방 지쳤지요. 며칠 빼먹으면 다시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웠고요. 그래서 요즘은 몇 줄만 써요. 날씨, 먹은 것, 기억에 남는 한 장면 정도요.
몇 줄만 써도 신기하게 남는 게 있어요.
비가 와서 창문에 김이 서렸다, 편의점 직원이 우산 챙기라고 했다, 같은 거요. 그런 문장을 읽으면 그날이 조금씩 되살아나네요. 큰일은 기억하지만 작은 장면은 적어두지 않으면 금방 사라지더라고요.
얼마 전 친구가 자기도 일기를 쓴다고 했어요.
자기는 그날 고마웠던 걸 하나씩만 적는대요. 힘든 날에도 억지로 하나는 찾아서요. 처음엔 억지 같았는데 쓰다 보니 정말 하나씩은 있더라고 했지요. 그 방식도 좋겠다 싶었어요.
일기는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게 아니니까 잘 쓸 필요가 없겠지요.
오늘 하루를 누군가 지켜봤다는 게 남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아요. 그 누군가가 나 자신이어도요. 오늘 밤도 서랍을 열고 몇 줄 적으려고요. 한 줄이어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