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옷장 깊숙한 데서 검정 카디건을 꺼냈어요.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접힌 영수증 하나가 나오더라고요.
지난가을 어느 저녁 동네 빵집에서 산 거였네요. 그걸 펴보는데 이유 없이 마음이 조금 내려앉았어요.
가을을 탄다고들 하지요.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쓸쓸하고, 저녁이면 마음이 가라앉는 거요. 이유를 찾아보려 해도 잘 안 잡히더라고요. 그냥 바람이 달라졌을 뿐인데요.
생각해보면 몸이 먼저 알아채는 것 같아요.
퇴근길이 어느새 어둑해져 있고, 아침에 일어나도 창밖이 덜 밝지요. 빛이 줄면 기운도 조금 줄어드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마음이 가라앉는 게 아니라 계절에 맞춰 속도를 늦추는 거라고 여겨보면 조금 덜 낯설더라고요.
가을에는 유난히 지난 일이 잘 떠올라요.
카디건 주머니의 영수증처럼요. 지난 이맘때 누구와 걸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바람 냄새에 실려 오네요.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느낌이 드니까 저절로 뒤를 돌아보게 되는 거겠지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람은 지난 같은 계절의 자기를 잠깐 만난다.
그 만남이 늘 반가운 건 아니지만요.
예전에는 이 기분을 빨리 떨치려고 했어요.
약속을 잡고, 일부러 밝은 노래를 틀고요. 그런데 그럴수록 더 어색하더라고요. 요즘은 그냥 쓸쓸한 채로 두고 있어요. 억지로 밀어내지 않으니까 오히려 금방 옅어지네요.
어제 저녁엔 창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열어뒀어요.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고 멀리서 풀벌레 소리가 났어요. 따뜻한 차를 한 잔 들고 한참 들었지요. 쓸쓸한데 싫지 않은 시간이었네요.
가을을 탄다는 건 마음이 계절을 잘 듣고 있다는 뜻 같아요.
무뎌진 사람은 바람이 바뀌어도 모르고 지나가겠지요. 그러니 조금 가라앉는 저녁이 와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 쓸쓸함도 계절처럼 지나가고, 지나가는 동안은 꽤 고운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