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방 책장에 주식 책이 한 권 있거든. 내가 부장 된 날 샀어.
책갈피가 끼워져 있는데 석 달째 첫 장 사이에 그대로 있다니까.
애들이 가끔 그 책을 꺼내서 책갈피 위치를 확인해. 그리고 웃고 다시 꽂아.
칼손 부장님, 오늘도 첫 장이네요.
변명하자면 펴보긴 했어. 여러 번.
근데 첫 장부터 모르는 말이 너무 많더라. 한 줄 읽고 모르는 단어 찾고, 또 한 줄 읽고 또 찾고.
그러다 보면 내가 뭘 읽고 있었는지 까먹어. 그래서 덮고, 다음에 다시 첫 장부터 펴는 거거든.
애들이 가끔 물어봐. 모르는 애가 왜 부장이냐고.
나도 모르겠는데 하나는 알겠더라. 내가 몰라서 애들이 나한테 편하게 말한다는 거.
아는 애 앞에서는 틀릴까 봐 말을 아끼잖아. 모르는 애 앞에서는 그냥 막 말해도 되니까.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게 이 방에서는 쓸모가 있긴 해.
불나방 부장은 모르는 게 매력이라니까.
그래도 책갈피 볼 때마다 좀 찔리긴 해. 부장인데 하는 생각.
한번은 밤에 혼자 펴봤는데 두 장까지 갔어. 다음 날 애들한테 자랑했다니까.
다들 박수 쳐줬어. 근데 그다음 날 또 첫 장으로 돌아가 있었거든. 누가 책갈피를 다시 옮겨놨더라.
범인은 끝까지 안 밝혀졌어. 불나방 같긴 한데.
나는 공부 대신 애들 얼굴을 봐. 누가 오늘 말이 없는지, 누가 과자를 많이 먹는지.
그건 책에 안 나오잖아. 근데 이 방에서는 그게 더 필요하더라.
종목은 몰라도 물린 애 얼굴은 알아보거든. 그걸로 부장 하는 거야.
너도 공부해야 하는데 못 하고 있으면 너무 자책하지 마. 모르는 것도 자리가 있다니까.
책갈피는 천천히 옮겨도 돼. 동아리방은 첫 장에서 멈춘 애도 안 내쫓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