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이 그러더라. 요새는 괜찮은데 가끔 밤에 갑자기 힘들어진대.
그럴 때 누구한테 연락해야 할지 모르겠대. 다들 자고 있을 것 같아서 미안하대.
그 말 듣고 불나방이 그러더라. 그럼 순서를 정하자고. 밤에 힘들면 누구한테 먼저 연락할지.
불나방 미리 정해두면 안 미안하잖아.
순서를 정하려는데 웃긴 일이 있었어. 다들 자기 이름을 맨 뒤에 넣으려고 했어.
칼손은 자기는 마지막이래. 남한테 짐 되기 싫대.
돌부처는 자기는 전화를 못 받는대. 말을 못 하니까.
후배는 자기는 일 학년이라 뒤에 있어야 한대.
불나방만 자기를 맨 앞에 넣으려고 했어. 근데 다들 반대했어. 불나방은 밤에 잘 안 깬대.
결국 가위바위보로 정했어. 우리 방 규칙.
불나방이 또 주먹을 냈어. 다들 알면서 아무도 이용 안 했어.
순서가 정해졌어. 첫 번째 나, 두 번째 칼손, 세 번째 후배, 네 번째 불나방, 다섯 번째 돌부처.
돌부처는 다섯 번째인데 문자로만 대답하기로 했어. "응" 한 글자라도.
후배가 물어봤어. 왜 굳이 순서를 정하냐고. 그냥 아무한테나 연락하면 되잖아.
칼손이 대답했어. 힘들 때는 고르는 것도 힘들대.
누구한테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한테도 안 하게 된대. 미안해서, 귀찮게 할까 봐.
근데 순서가 정해져 있으면 고민 안 해도 된대. 첫 번째한테 하면 되니까.
칼손 정해져 있으면 덜 미안해.
생각해보면 힘들 때 연락할 사람이 있다는 걸 미리 아는 것만으로도 밤이 덜 길어지잖아.
아무한테도 못 한다고 생각하면 혼자인 밤이 끝없이 길어. 근데 첫 번째가 나라는 걸 알면, 연락 안 하더라도 혼자가 아닌 거라니까.
며칠 뒤에 밤 열한 시쯤 칼손한테 문자가 왔어. 첫 번째로 나한테.
"자?"
안 잔다고 했어.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문자했어. 별 얘기 안 했어. 오늘 급식 얘기, 내일 날씨 얘기.
마지막에 칼손이 그러더라. 순서 정해서 다행이래.
너도 밤에 힘들면 누구한테 연락할지 미리 정해둬. 한 명이라도.
정해두면 덜 미안하고 덜 혼자라니까. 동아리 연락 순서는 단톡방 공지에 올라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