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리모컨이 누구한테 있는지가 거의 정해져 있거든. 우리 집은 아빠야.
나는 이게 그냥 힘 세기 순서인 줄 알았다니까.
근데 잘 보니까 좀 달라. 리모컨을 쥔 사람이 채널을 돌리기 전에 한 번씩 주위를 봐.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 그러시더라. 다들 보고 있나 확인하는 거잖아.
쥐고 있으면 편할 것 같은데 제일 눈치를 보고 있는 거였더라.
칼손 저희 집은 아무도 안 쥐어요.
반대로 안 쥔 사람은 아무 책임이 없잖아. 재미없으면 그냥 폰 보면 되고.
쥔 사람은 재미없어 보이면 자기 탓인 것 같은 거라니까. 그래서 계속 돌리시는 거고.
약속 장소 정하는 사람이랑 완전히 같은 거였어. 정하는 쪽이 제일 손해인 거잖아.
한번은 내가 리모컨을 가져와 봤거든. 그러니까 내가 눈치를 보게 되더라.
무슨 채널을 틀어야 다들 괜찮을까 하고 계속 생각하게 되잖아. 십 분 만에 도로 드렸다니까.
그 십 분에 아빠 자리를 좀 알겠더라. 매일 그러고 계셨던 거고.
돌부처 쥐면 일이 되지.
지금은 아빠가 뭘 트시면 그거 괜찮다고 한마디 한다니까. 별거 아닌데 그 말이 있고 없고가 다르더라.
눈치를 안 보셔도 되게 만들어드리는 거잖아. 방에서 일 맡은 애한테 끝났다고 말해주는 거랑 같은 거고.
그리고 방에서도 뭘 정하는 애한테 그 말을 한다니까. 그거 괜찮다고 한마디만 해줘도 다르더라.
정하는 사람은 정하고 나서가 더 불안한 거잖아.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집에서도 오래 보고 나서야 아는 게 많거든. 리모컨도 그냥 아빠 거인 줄 알았잖아.
근데 쥐고 있는 게 편한 게 아니었어. 정하는 쪽이 늘 그렇더라.
그래서 정하는 사람한테는 괜찮다는 말을 한 번씩 해주면 되는 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