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손님이 오면 내가 하는 게 정해져 있거든. 아무도 시킨 적이 없어.
세보니까 셋이더라. 매번 같은 순서로 해.
제일 먼저 하는 게 티비를 끄는 거야. 손님 오시면 바로 끈다니까.
두 번째가 내 물건 치우는 거고 세 번째가 방에 들어가는 거고.
셋 다 나를 안 보이게 하는 거잖아. 그거 세보고 좀 이상했어.
칼손 저는 그냥 방에 있어요.
셋이 다 사라지는 방향이더라. 뭘 하는 게 아니라 빠지는 거고.
엄마는 뭘 내오시고 아빠는 앉아서 말씀하시는데 나는 없어지는 거잖아.
그게 내 몫이 된 건데 아무도 정해준 적이 없는 거라니까.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어. 어릴 때 몇 번 그러다 굳은 것 같고.
집안일 중에 내 몫이 굳는 거랑 같은 거잖아. 몇 번 하면 그게 자리가 되는 거고.
근데 이건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자리가 된 거고. 그게 좀 다르더라.
돌부처 안 하는 것도 몫이지.
한번은 안 들어가고 앉아 있어봤거든. 손님이 계신 데.
그랬더니 아무도 뭐라고 안 하더라. 그냥 같이 앉아 있었고.
내가 만든 규칙이었던 거잖아. 아무도 안 정했는데 나만 지키고 있었던 거고.
셋 중에 하나는 그만뒀거든. 방에 들어가는 거.
나머지 둘은 그대로 하고. 티비 끄는 거랑 물건 치우는 건 해도 되는 거고.
빠지는 거 하나만 안 하기로 한 거라니까. 그거 하나가 제일 컸고.
칼손 그냥 앉아 있어도 되는데요.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내가 왜 그러는지도 세보고 나서야 알거든. 그냥 하던 거니까.
근데 시킨 적 없는 게 제일 먼저 몸에서 나오더라. 그게 제일 굳은 거고.
방에서 안 적힌 규칙이 제일 잘 지켜지는 거랑 같은 거라니까. 좋은 쪽이든 아닌 쪽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