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이 그날 진짜 안 좋았어. 동아리방 들어올 때부터 얼굴이 굳어 있었어.
다들 평소처럼 했어. 불나방이 과자 밀어주고, 내가 옆에 앉고, 돌부처가 창문 한 뼘 열고.
근데 칼손 표정이 하나도 안 풀렸어.
불나방이 농담을 했어. 칼손이 안 웃었어.
후배가 따뜻한 차를 타줬어. 칼손이 고맙다고만 하고 안 마셨어.
나는 밥 먹었냐고 물었어. 칼손이 고개만 끄덕였어.
다들 점점 할 말이 없어졌어. 뭘 해도 안 들어가는 거야.
불나방 아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니까.
다들 좀 당황했어. 우리 방 방법이 다 안 통하는 날은 처음이었거든.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날 칼손은 위로받을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거야.
너무 힘들면 위로도 무거운 거잖아. 대답해야 하고, 고맙다고 해야 하고, 괜찮은 척해야 하고.
그러니까 우리가 애쓸수록 칼손은 더 힘들었을 수도 있는 거라니까.
결국 다들 위로를 멈췄어. 누가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불나방이 가방에서 숙제를 꺼냈어. 나도 꺼냈어. 돌부처랑 후배도.
다들 조용히 숙제를 했어. 칼손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같은 방에 있었어.
삼십 분쯤 지났을까. 칼손이 갑자기 그러더라.
칼손 나도 숙제 할래.
그리고 가방에서 숙제를 꺼냈어. 우리 옆에 앉아서 같이 했어.
아무도 아무 말 안 했어. 근데 칼손 어깨가 아까보다 내려가 있었어.
한 시간 뒤에 칼손이 후배가 타준 차를 마셨어. 식어 있었는데 다 마셨어.
생각해보면 위로가 늘 말이어야 하는 건 아니더라.
그날 칼손한테 필요한 건 말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이었던 거야. 우리가 각자 숙제하니까 칼손도 아무 신경 안 쓰고 있을 수 있었고.
돌부처 숙제가 위로였네.
너도 무슨 말을 들어도 안 풀리는 날이면 억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마. 그런 날이 있는 거거든.
그냥 같은 방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충분하다니까. 동아리방엔 숙제하면서 기다려줄 애들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