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갔다가 달력을 넘겨봤어요. 지난 장 뒤에 뭐가 적혀 있더라고요.
제가 지나가듯 말한 걸 엄마가 받아 적어두신 거였습니다. 날짜까지 옆에 적혀 있더라고요.
뭘 적어두셨나 보니 제 얘기였어요.
언제쯤 뭘 하겠다고 제가 말한 거고요. 그걸 저는 기억도 못 하고 있었네요. 지나가듯 한 말이었으니까요. 말한 쪽은 잊고 들은 쪽은 적어둔 셈이군요.
받아 적힌 말은 그 사람에게 그만큼 중요했다는 뜻이다. 말한 쪽은 대개 그걸 모른다.
물어보지 않아도 알겠더라고요.
잊어버릴까 봐 적으신 게 아니라 그날 그 얘기를 잘 들으셨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나중에 물어보실 생각이셨을 거고요. 그런데 아직 안 물어보셨어요.
제가 그 일을 아직 못 하고 있으니까요.
물어보면 제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안 꺼내시는 거겠지요. 적어두고 기다리고만 계신 거지요. 그게 몇 달이고요.
그래서 그날 제가 먼저 꺼냈어요.
달력 뒤에 적힌 거 봤다고요. 엄마는 좀 민망해하시면서 지우려고 하셨어요. 제가 그냥 두시라고 했고요. 그러고 그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짧게 말씀드렸고요.
넘겨보니 그 전 장에도 적혀 있더라고요.
몇 달치가 다 있더라고요. 제가 한 말이 거기 순서대로 남아 있는 거지요. 제 기억보다 그 달력이 저를 더 잘 알고 있는 셈이네요.
집에 와서 저도 하나 시작했어요.
가족이 한 말 중에 걸리는 걸 한 줄씩 적어둬요. 나중에 물어보려고요. 받은 걸 그대로 해보는 거고요.
적어두는 건 잊을까 봐가 아니라 그 말이 중요해서인걸요.
그러니 누가 내 말을 적어뒀다면 그건 꽤 큰 일이고요. 오늘 어디서 그런 걸 보셨다면, 지우지 마시라고 하셔도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