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에 물을 한 컵 떠다 머리맡에 둡니다. 아침에 보면 거의 그대로더라고요.
그런데 다음 날 또 새로 떠다 놓네요. 몇 년째 그러고 있습니다.
목이 마를 때를 대비하는 거라고 생각했는걸요.
그런데 실제로 마시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마시려고 두는 게 아닌 셈이군요. 다른 이유가 있는데 제가 그걸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준비는 쓰이지 않아도 값을 한다. 그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밤이 조금 짧아진다.
생각해보면 이런 것 같네요.
밤에 깼을 때 부엌까지 가야 하면 그 사이에 잠이 다 달아나더라고요. 불을 켜야 하고 걸어야 하고요. 머리맡에 물이 있으면 그럴 일이 없는 거지요.
일어날 확률은 낮은데 그 낮은 확률에 대비해두는 겁니다.
이상한 건 준비를 해두면 오히려 안 깬다는 것이군요.
없으면 밤에 목이 마를까 봐 신경이 조금 쓰이는데, 있으면 그 신경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깊게 자고 결국 안 마시게 되는 셈입니다. 물은 마시라고 있는 게 아니라 신경을 끄라고 있는 거였네요.
여행 가서 그걸 안 하면 티가 나더라고요.
낯선 데라 더 그렇겠지만 자다가 몇 번 깹니다. 그래서 요즘은 밖에서 잘 때도 컵이든 병이든 하나는 놓아둡니다. 습관 하나가 짐처럼 따라다니는 셈이지요.
이런 게 저한테 몇 개 더 있습니다.
내일 입을 옷을 걸어둔다든가 가방을 문 앞에 놓아둔다든가요. 다 아침에 몇 초 아끼자고 하는 게 아니라 그 몇 초를 미리 없애두는 거겠지요. 아침의 제가 결정을 덜 하게 해주는 겁니다.
컵이 그대로여도 아깝지가 않네요.
그게 있었다는 걸로 그날 밤이 조금 편했으니까요. 오늘 자기 전에 뭔가 하나 준비해두셨다면, 안 쓰게 되더라도 그건 이미 할 일을 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