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반납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이제 안 읽는 책인데 집에 있는 같은 책은 왜 못 버리는지 모르겠다고요.
그 말이 책 얘기로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런 관계가 몇 있으니까요.
먼저 이것부터 말씀드리는 게 좋겠죠. 대개는 어느 날 갑자기 안 맞아진 게 아닙니다.
조금씩 어긋나다가 어느 순간 만나고 오면 지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거죠. 그 인정까지도 시간이 꽤 걸립니다. 오래 알았다는 이유로 그 피로를 계속 다른 말로 설명하니까요.
그러니 안 맞는 걸 알아차리신 것만으로도 이미 한 단계는 지나신 겁니다.
이유가 몇 가지 겹쳐 있더군요.
시간이 아깝습니다. 십 년을 알았다는 사실 자체가 값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서 그만두면 그 십 년이 없어지는 것 같죠.
나를 아는 사람이 줄어듭니다. 새로 만난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오래된 사람은 설명 없이 알아듣죠. 그게 대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싫습니다. 상대가 잘못한 게 없으면 더 그렇습니다. 이유가 없는데 멀어지는 건 내가 변한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여기서 한 가지는 짚고 싶습니다. 십 년을 알았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만나야 할 이유가 아닙니다.
이미 쓴 시간은 어느 쪽을 고르든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을 근거로 다음 십 년까지 정해버리죠. 그건 계산이 아니라 아까움입니다.
이 얘기가 정리하라는 쪽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끊는 걸 잘 권하지 않습니다.
대신 간격을 늘리시면 됩니다. 매달 보던 걸 계절에 한 번으로, 긴 자리를 짧은 자리로요. 관계는 있는가 없는가로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가까이 둘 것인가는 내가 정할 수 있죠.
이렇게 하면 십 년이 없어지지도 않고, 만나고 지치는 일도 줄어듭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사이가 다시 좁아지는 경우도 있더군요.
놓지 않아도 된다. 다만 얼마나 무겁게 들 것인지는 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은 계속 변합니다. 스무 살에 맞던 사람과 마흔에 맞는 사람이 다른 건 누가 잘못한 게 아니죠. 그때 그 사람과 잘 맞았다는 사실은 지금 안 맞는다고 해서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멀어지는 걸 그 시절까지 부정하는 일로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 시절은 그 시절대로 남아 있습니다.
책을 못 버리시겠다던 그분께 저는 안 버리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손 닿는 자리에는 안 두셔도 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