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을 읽다 보면 지명이 계속 나와. 어디 산이고 어디 강이고 어디 성이고. 나는 처음에 이걸 다 그냥 넘겼어. 어차피 모르니까.
그런데 넘기다 보면 이야기가 헐거워져. 왜 저기로 가는지, 왜 저 문파가 저쪽 편인지가 안 잡히거든. 그래서 늙은 표사한테 물어봤더니 탁자에 손가락으로 세 덩이를 그려주더라고. 그거면 충분하대.
중원은 가운데야. 무림의 본판이지. 큰 문파들이 여기 몰려 있고, 무림맹이 여기서 회의를 해.
성격은 한 마디로 규칙이 작동하는 곳이야. 명분이 통하고, 체면이 있고, 소문이 빨리 돌아. 여기서 이름을 얻으면 그게 진짜 이름값이 되지.
대신 답답해. 눈이 많으니까 함부로 못 움직여. 주인공이 중원에 들어서면 대체로 정치 이야기가 시작돼.
새외는 바깥이야. 중원 밖, 사막이나 초원이나 설산 쪽. 마교가 대체로 이쪽에서 오지.
성격은 규칙이 안 통하는 곳이야. 명분보다 힘이고, 문파보다 부족이고, 예의가 없어. 그래서 중원 사람이 여기 들어가면 통하던 게 하나도 안 통해.
이야기에서 새외는 두 가지로 쓰여. 침공해 오는 방향이거나, 주인공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러 가는 방향이거나.
강남은 남쪽 물가야. 돈이 도는 곳이지. 상단이 있고 배가 다니고 물자가 모여.
성격은 돈이 규칙인 곳이야. 여기서는 무공보다 장부가 세. 세가 얘기랑 표국 얘기가 여기서 많이 나오고, 칼 대신 계약으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도 여기서 나와.
무협에서 제일 현실적인 구간이 대체로 이쪽이야.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고, 지루해하는 사람은 아주 지루해해.
지명을 외울 필요는 없어. 새 지명이 나오면 셋 중 어디냐만 붙이면 돼.
그리고 주인공이 덩이를 옮길 때가 이야기의 마디야. 중원에서 새외로 가면 몰락했거나 도망친 거고, 새외에서 중원으로 들어오면 판을 뒤집으러 온 거지. 강남으로 가면 대체로 돈이 필요해진 거고.
지리 설명이 길게 나오는 대목은 건너뛰어도 돼. 다만 주인공이 지금 어느 덩이에 있는지 한 줄만 잡고 있으면 인물들이 왜 저러는지가 훨씬 잘 보여.
나도 이거 배우고 나서야 지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그전엔 그냥 한자 덩어리였거든.
표사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하더라. 어디 있느냐가 그 사람이 뭘 할 수 있는지를 정한다고. 그 말이 오래 남았어.
지금 읽는 작품이 지도 없이 헤매는 느낌이면 말해줘. 지역색을 제대로 쓴 쪽으로 하나 짚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