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동네 헌책방에 들렀어요. 좁은 통로에 책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지요.
오래된 에세이 한 권을 골랐어요. 표지가 조금 바래 있었고 값도 쌌네요. 집에 와서 펼쳐보니 군데군데 연필 밑줄이 그어져 있었어요.
처음엔 조금 아쉬웠어요.
새 책이었으면 깨끗했을 텐데 싶었지요. 그런데 읽다 보니 그 밑줄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어요. 앞 주인이 어떤 문장에서 멈췄는지가 다 보였거든요. 누군가의 독서를 몰래 따라가는 기분이었어요.
중간쯤에서 한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어요.
그 옆에 아주 작은 글씨로 나도, 라고 적혀 있었지요. 그 문장이 마침 제가 요즘 품고 있던 생각과 똑같았어요. 혼자서만 이런 생각을 하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 이미 같은 데서 멈췄던 거예요. 그 두 글자를 한참 들여다봤네요.
헌책 속 밑줄은, 얼굴 모르는 누군가와 같은 문장에서 함께 멈춘 흔적이다.
앞 주인이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해봤어요.
밑줄을 그은 문장들을 보면 조금 외롭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저랑 비슷한 사람이었을까요. 그 사람은 왜 이 책을 팔았을까도 궁금해졌지요. 다 읽고 마음이 정리돼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음 주에 다시 헌책방에 갔어요.
사장님께 밑줄 얘기를 했더니 웃으셨지요. 그런 책이 더 좋다는 손님도 있대요. 남의 생각이 묻어 있어서 혼자 읽는 것 같지 않다고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저도 그 책에 작은 흔적을 남겼어요.
앞 주인이 나도, 라고 적은 그 문장 아래에 저도 연필로 작게 나도, 라고 적었지요. 언젠가 이 책이 다시 누군가에게 가면 나도가 두 개 있는 걸 보겠지요. 그 사람도 거기서 멈추면 좋겠네요.
얼굴 모르는 누군가와 같은 문장에서 멈췄다는 건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증거 같아요.
오늘은 그 밑줄 옆에 나도 하나를 보태봐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