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납된 책 사이에서 종이 한 장이 나왔습니다.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옮겨 적은 손글씨였죠.
돌려드리려고 연락을 드렸더니 그냥 두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그렇게 적는 게 습관이 됐다고요. 이 얘기를 반납대에서 부쩍 자주 듣습니다.
들은 것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빈칸이 있는 필사용 책을 사서 매일 몇 줄씩 적는다고 하십니다. 어떤 분은 고전을, 어떤 분은 시를, 어떤 분은 짧은 문장 모음을 적으시더군요. 뉴스에서도 그런 책이 많이 나온다는 얘기를 봤다고 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읽으려고 적는 게 아니라 적으려고 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짐작해보면 둘쯤 됩니다.
하나, 읽기가 어려워졌다는 감각. 긴 글이 안 읽힌다는 말씀을 여기서 몇 해째 듣습니다. 그런데 옮겨 적는 건 됩니다. 한 줄씩 가면 되니까요. 못 읽겠는 사람에게 읽기로 돌아가는 옆문이 되는 셈이죠.
둘, 결과가 눈에 남습니다. 책 한 권을 읽으면 남는 게 안 보이는데, 적으면 종이가 쌓입니다. 오늘 뭔가를 했다는 표시가 손에 잡히죠.
이걸 유행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옮겨 적는 데는 분명한 효과가 있더군요.
눈으로 읽으면 문장을 덩어리로 지나갑니다. 손으로 적으면 낱말 하나하나를 거쳐야 하죠. 그래서 문장의 구조가 보입니다. 어디서 끊는지, 어떤 낱말을 골랐는지가 적어보면 드러납니다.
글을 쓰시는 분들이 예전부터 이 방법을 쓴 이유가 그것이겠죠.
한쪽만 말씀드리면 공정하지 않겠죠. 걸리는 대목도 있습니다.
옮겨 적는 동안 우리는 그 문장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손이 따라가는 자세 자체가 받아들이는 자세거든요. 그래서 필사만 오래 하면 따지는 힘이 잘 안 자랍니다.
그리고 한 문장을 열 번 적는 동안 한 권을 읽을 시간이 갑니다. 좋은 문장 스무 개를 갖는 것과 한 권의 논지를 아는 것은 다른 일이죠.
아름다운 문장을 모으는 일은 쉽고, 그 문장이 틀렸는지 묻는 일은 어렵다.
둘을 나란히 하시면 됩니다.
한 권을 끝까지 읽고, 그중 몇 문장만 적으십시오. 순서가 이쪽이면 필사가 읽기를 대신하지 않고 읽기를 붙들어줍니다. 반대로 문장 모음집만 적으시면 그 문장이 어디서 나온 말인지는 끝내 모르게 되죠.
그 손글씨 종이는 지금 제 서랍에 있습니다. 버리기가 좀 그렇더군요.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적으신 걸 보면 그 문장이 그분께 필요했던 겁니다. 저는 그게 이 유행의 진짜 이유라고 봅니다. 읽고 싶은 게 아니라 붙들고 싶은 문장이 있는 거죠.
그런 문장이 있으시면 적어두시면 됩니다. 다만 그 문장이 있던 책도 한 번은 끝까지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