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 안에 필체가 다른 밑줄이 세 종류 있던 책이 있었습니다. 세 사람이 각각 다른 문장에 그은 거예요.
겹치는 문장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게 신기해서 한참 봤어요.
먼저 분명히 해두면, 도서관 책에 표시를 하는 건 안 됩니다. 다음 사람이 그 상태로 받으니까요.
다만 이미 그어진 책을 손에 쥐신 분께 드릴 말씀은 좀 다릅니다. 그 흔적을 어떻게 볼지는 정할 수 있거든요.
밑줄이 그어진 문장을 보면 자연히 거기서 멈추게 되죠. 남이 정해둔 중요한 자리로 눈이 끌려가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아예 신경이 쓰여 못 읽겠다고 하십니다. 그 마음도 이해가 가요. 혼자 읽는 시간에 다른 사람이 끼어든 셈이니까요.
남이 멈춘 자리에서 나도 멈춘다면, 그 책은 아직 내 것이 아니다.
세 사람이 다 다른 문장에 그었다는 건 그 책이 세 방향으로 읽혔다는 뜻이죠. 그 사실이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같은 페이지에서 나는 아무 감정이 없는데 누군가는 줄을 그었다면, 그 사람은 지금 나와 다른 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 차이를 보는 것도 읽기의 일부더군요.
책에는 못 긋지만 메모지에는 됩니다. 저는 대출대에서 종이를 몇 장 드리기도 해요.
내가 멈춘 자리를 따로 적어두면 남의 밑줄에 덜 끌립니다. 내 목록이 있으면 남의 목록이 그렇게까지 크게 안 보이거든요.
낙서가 많아서 읽기 힘든 책은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다른 판본이 있으면 바꿔 드리고, 심하면 저희가 서가에서 뺍니다.
참고 읽으실 필요는 없어요. 그건 저희가 관리할 몫입니다.
그 세 종류 밑줄을 보면서 저는 제가 어디에 그었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세 자리 다 아니었어요.
같은 책 앞에서 각자 다른 데 멈춥니다. 남이 그어둔 자리를 지나 내 자리를 찾는 것까지가 읽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