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불나방이랑 지하상가에 옷 사러 갔거든. 패딩 말고 다른 겨울옷.
평일 낮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어. 가게마다 사장님들이 문 앞에 나와 계셨어.
우리가 들어간 옷가게 사장님이 옆 가게 사장님이랑 얘기를 하고 계시더라.
우리는 옷걸이 사이에서 옷을 보고 있었어. 사장님들은 우리가 안 보이셨나 봐.
두 분이 주식 얘기를 하셨어. 요새 장사도 안 되는데 그것까지 안 좋다고.
한 분이 그러셨어. 손님 없으면 자꾸 폰만 보게 된다고.
다른 분이 고개를 끄덕이셨어. 자기도 그렇다고.
불나방 손님 없을 때 폰 보는 거, 동아리방이랑 같다.
그때 다른 손님이 들어왔어. 그러자 사장님 목소리가 확 바뀌었어.
"어서 오세요!" 밝게. 아까 한숨 쉬던 목소리가 아니었어.
손님한테 옷 보여주시고 웃으시고. 완전 다른 사람 같았어.
손님이 나가니까 사장님이 다시 옆 가게 사장님한테 가셨어. 그리고 아까 끊긴 문장을 정확히 이어서 말씀하셨어.
녹색어머니 봉사 갔을 때 엄마들도 그러셨잖아. 신호 바뀌면 끊고, 빨간불이면 이어서.
어른들은 다 그렇게 하시나 봐. 해야 할 일 앞에서는 걱정을 잠깐 접어두고, 끝나면 다시 펴시는 거.
그게 대단하면서도 좀 짠했어. 걱정을 들고 웃는 거잖아.
칼손 우리는 웃는 척 잘 못 하는데.
결국 우리는 그 가게에서 옷을 하나씩 샀어. 불나방은 니트, 나는 목도리.
계산하는데 사장님이 웃으시면서 그러셨어. 학생들 덕분에 오늘 첫 개시라고.
불나방이 그 말 듣고 엄청 좋아했어. 우리가 첫 손님이었대.
사장님이 목도리를 예쁘게 접어주시면서 그러셨어. 따뜻하게 하고 다니라고.
나오면서 보니까 사장님이 다시 옆 가게 사장님이랑 얘기하고 계셨어. 근데 아까보다 좀 웃는 얼굴이셨어.
첫 개시가 사장님한테 좀 힘이 됐나 봐. 그 목도리 지금 매고 다녀. 매면 그 사장님 얼굴이 생각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