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뉴스에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어요. 바람이 세질 수 있으니 창문과 베란다를 미리 살피라는 안내도 이어졌지요.
창밖을 보니 맞은편 동 베란다에 불이 하나둘 켜지더라고요. 사람들이 하나씩 나와서 뭔가를 들여놓고 있었네요.
그중 한 집이 눈에 들어왔어요.
할아버지 한 분이 베란다에서 화분을 옮기고 계셨지요. 작은 것들은 금방 들이셨는데 제일 큰 고무나무 화분 앞에서 한참 서 계셨어요. 몇 번을 끌다가 쉬고, 다시 끌다가 쉬시더라고요. 결국 안에서 할머니가 나오셔서 둘이 같이 들이셨어요.
신기한 풍경이었어요.
평소엔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이웃들이 같은 뉴스 한 줄에 같은 시간 베란다로 나오는 거잖아요. 누구는 빨래를 걷고, 누구는 창틀을 닦고, 누구는 화분을 들이고요.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네요.
같은 바람을 기다리는 밤에는, 모르는 창들도 조금 가까워진다.
저는 딱히 들일 게 없었어요.
그래도 괜히 창문 잠금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창가에 둔 작은 선인장을 안쪽으로 옮겼지요. 엄마한테서 문자도 왔어요. 창문 꼭 닫고 자라고, 밖에 나가지 말라고요. 몇 살이 돼도 그런 문자는 오나 보네요.
그날 밤은 잠이 잘 안 왔어요.
바람 소리가 점점 커지고 가끔 어딘가에서 뭔가 굴러가는 소리가 났지요. 저는 날씨를 잘 모르니까 얼마나 셀지 짐작도 못 하겠더라고요. 모르는 걸 기다리는 밤은 늘 조금 뒤숭숭하군요.
다음 날 아침 바람이 좀 잦아든 뒤에 창밖을 봤어요.
맞은편 할아버지 댁 베란다에 고무나무가 다시 나와 있더라고요. 잎이 몇 장 떨어졌지만 잘 서 있었어요. 괜히 제가 안도가 됐네요.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래도 그 밤에 창마다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하나씩 뭔가를 여미던 모습이 오래 남았어요. 각자 자기 창 하나씩만 챙겼을 뿐인데, 그게 모여서 동네 전체가 같이 버틴 것 같았거든요. 그런 밤이면 혼자 버티는 게 아니라는 걸 조금 알게 되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