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 담당자가 마감을 하루 당겨달라고 부탁해왔어요. 무리한 부탁이었지요.
거절하려다 그 사람 목소리가 너무 지쳐 있어서 결국 들어줬어요. 그날 야근을 했고요. 다음 날 선배가 그 얘기를 듣고 말했어요. 넌 마음이 너무 약해.
그 말이 하루 종일 맴돌았어요.
맞는 말 같기도 했거든요. 저는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고, 남의 사정을 들으면 쉽게 흔들리지요. 그래서 손해를 볼 때도 많았어요. 약하다는 말이 꼭 흠처럼 들리더라고요.
생각해보면 그 담당자의 목소리가 계속 걸렸어요.
전화 너머로 들리는 한숨이요. 그 사람도 위에서 압박을 받고 있었겠지요. 그 사정이 보이니까 거절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제가 흔들린 건 그 사람의 사정을 알아봤기 때문이었군요.
쉽게 흔들리는 마음은, 남의 사정을 쉽게 알아보는 마음과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그다음 날 그 담당자에게서 우편이 왔어요.
손편지였지요. 덕분에 큰일을 넘겼다고, 정말 고마웠다고 적혀 있었어요. 회사 일로 손편지를 받은 건 처음이었네요. 그 편지를 읽으며 제가 한 일이 꼭 약해서만은 아니었구나 싶었어요.
쇼펜하우어는 남의 괴로움을 제 것처럼 느끼는 연민을 사람의 가장 귀한 마음으로 봤대요.
마음이 약하다는 건 어쩌면 그 연민이 쉽게 움직인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늘 들어줄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그 마음 자체를 미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나중에 선배가 덧붙였어요.
약한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너만 지칠까 봐 그런 거라고요. 그 말을 듣고 조금 웃었어요. 선배도 결국 제 마음을 걱정해준 거였더라고요. 앞으로는 들어줄 것과 거절할 것을 조금씩 나눠보기로 했어요.
쉽게 흔들리는 마음은 남의 사정을 쉽게 알아보는 마음이기도 하지요.
약하다는 말에 너무 오래 움츠러들지 않으셔도 괜찮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