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침부터 비가 내렸지요.
밤에 일기장을 펴고 그날 한 일을 적어봤어요. 비, 국수, 낮잠, 동생 전화. 네 단어뿐이었네요. 그런데 그 네 단어를 몇 번이나 다시 읽게 되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에 비가 오고 있었어요.
점심엔 냉장고에 남은 애호박으로 잔치국수를 끓였지요. 창가에 앉아 국수를 먹으며 빗소리를 들었어요. 멸치 육수 냄새가 부엌에 가득했고요. 별것 아닌 점심이었는데 이상하게 맛있었네요.
국수를 먹고 소파에 누웠어요.
그대로 한 시간쯤 잤지요. 깨어보니 비가 잦아들어 있었고 방 안이 회색빛으로 차분했어요. 서두를 일도, 해야 할 일도 없는 오후였어요. 그 느긋함이 몸에 그대로 남아 있었네요.
아무 일도 없던 하루가 오래 남는 건, 그날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별일은 없었어요. 뭐 하냐고, 밥은 먹었냐고 묻는 전화였지요. 저는 국수 먹고 낮잠 잤다고 했어요. 동생이 부럽다며 웃었고요. 십 분쯤 수다를 떨고 끊었는데 그 목소리가 하루의 마지막을 따뜻하게 덮어줬어요.
생각해보면 그날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던 하루였어요.
뭘 이뤄야 한다는 생각도, 내일 걱정도 없었지요. 쇼펜하우어는 바라는 마음이 잠깐 멈출 때 비로소 평온이 온다고 했대요. 그날이 딱 그랬던 것 같아요. 바라는 게 없으니 있는 그대로가 다 좋았던 거군요.
요즘도 가끔 그 페이지를 펼쳐봐요.
비, 국수, 낮잠, 동생 전화. 그 네 단어만 봐도 그날의 공기가 떠오르지요. 큰일이 있었던 날보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요.
특별한 일이 없어도 마음이 오래 머문 하루는 그 자체로 귀하겠지요.
오늘이 그런 날이라면 작게라도 적어둬도 좋겠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