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방 문 앞 복도에 창문이 있거든. 햇빛 각도에 따라 얼굴이 비쳐.
어느 날 내가 복도 끝에서 오는데 칼손이 그 창문 앞에 서 있더라.
자기 얼굴을 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더니 문을 열고 들어갔어.
나는 그거 보고 좀 멈춰 섰어. 표정을 고르고 있었던 거야.
내가 들어갔을 때 칼손은 멀쩡한 얼굴이었어. 웃으면서 인사도 하고.
아무도 몰랐을 거야. 복도에서 표정 고르는 거 못 봤으면.
근데 나는 봤잖아. 그래서 그 웃음이 좀 다르게 보이더라.
칼손 왔냐. 오늘 날씨 좋다.
다들 가고 둘만 남았을 때 물어봤어. 아까 복도에서 뭐 했냐고.
칼손이 좀 당황하더니 솔직하게 말하더라. 들어오기 전에 표정을 정리한대. 매일.
안 좋은 날도 동아리방에선 괜찮아 보이고 싶대. 자기가 가라앉으면 다들 신경 쓸까 봐.
근데 그게 너무 지친대. 하루 종일 괜찮은 척하다가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하기 싫대.
생각해보면 괜찮은 척하는 건 진짜 힘이 드는 일이잖아.
진짜 기분이 하나 있고 보여주는 기분이 하나 있으면, 그 둘 사이를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하거든.
그게 하루 종일이면 지칠 수밖에 없는 거라니까. 아무것도 안 했는데 피곤한 이유가 그거야.
돌부처 나는 척을 못 해서 안 지쳐.
그래서 칼손한테 그랬어. 이 방에서는 표정 안 골라도 된다고.
학교에서 집에서 다 척해야 하면 한 군데는 안 해도 되는 데가 있어야 하잖아. 그게 동아리방이었으면 좋겠다고.
칼손이 한참 생각하더니 그러더라. 해보겠대. 근데 습관이라 금방은 안 될 거래.
그다음 주에 칼손이 복도 창문 앞에서 안 멈추고 바로 들어오더라.
얼굴이 좀 피곤해 보였어. 안 좋은 날이었나 봐. 근데 그 얼굴 그대로 앉았어.
다들 아무 말 안 했어. 불나방이 과자 하나 밀어줬고. 그거면 됐던 거야.
너도 하루 종일 괜찮은 척하느라 지쳤으면 한 군데만이라도 척 안 하는 데를 만들어봐.
없으면 동아리방 와. 여기선 복도 창문 앞에서 안 멈춰도 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