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에 붙어 있는 걸 오랜만에 봤네요. 종이 몇 장이랑 자석 몇 개였어요.
보니까 아직 쓸모가 있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날짜가 지난 안내장, 번호가 바뀐 연락처 같은 것들입니다.
붙일 때는 필요해서 붙였겠지요. 그런데 그게 지나고 나서도 그대로 있습니다. 쓸모로 보면 전부 떼야 하는데 손이 안 가더라고요.
벽에 붙여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그 시기에 내가 뭘 신경 쓰고 있었는지의 표시다.
몇 번 떼려고 해봤는걸요.
한 장 떼면 그 자리가 하얗게 드러납니다. 그게 좀 허전하더라고요. 문이 깨끗한 집이 좋아 보이기도 하는데 저는 그게 좀 썰렁하고요.
재밌는 건 매일 보면서도 안 읽는다는 겁니다.
몇 년 붙어 있으면 배경이 돼요. 그래서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갑니다. 오늘처럼 한 번 들여다볼 때만 보이는 거지요.
남이 오면 그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저 사람이 이걸 읽겠구나 싶으면 갑자기 창피해지고요. 그래서 그때만 몇 장 떼게 됩니다. 정리는 늘 남의 눈으로 하게 되네요.
전부 떼는 대신 한 칸만 비웠습니다.
그 자리에 지금 필요한 걸 하나 붙였고요. 그러니까 문을 열 때마다 그게 보입니다. 나머지는 그대로 두고 한 칸만 살아 있게 한 셈이지요.
남의 집에 가면 저는 그 집 냉장고 문을 한 번 봅니다.
뭐가 붙어 있는지 보면 그 집이 요새 뭘 하고 있는지가 대충 보이더라고요. 아이 그림이 붙은 집도 있고 아무것도 없는 집도 있고요. 깨끗한 문은 깔끔한 게 아니라 그냥 다른 방식인 거겠지요.
이사할 때가 되면 어차피 다 떼게 될 겁니다.
그때 한 장씩 보면서 이게 언제 거였나 하겠지요. 지금 미리 떼는 것보다 그때 한 번에 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요.
붙여둔 것들은 정보가 아니라 표시에 가까운걸요.
그 시기에 제가 뭘 신경 쓰고 있었는지가 거기 남아 있고요. 오늘 문에 붙은 걸 보셨다면, 한 칸만 비워서 지금 걸 붙여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