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를 꽤 의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저한테 먼저 오더라고요.
그쪽 목록에서 제가 앞에 있는 셈이지요.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된다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에요.
그동안 제가 잘 들어줬다는 뜻이겠지요. 그건 고마운 쪽입니다. 그러니 이 얘기를 불평처럼 하고 싶지는 않은걸요.
누군가 기대오면 우리는 서 있는 자세를 바꾸게 된다. 그 자세는 오래 유지하기가 어렵다.
다만 어떤 날은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힘든 날에 그쪽 얘기가 오면요. 그때는 제 상태를 접고 들어야 하는걸요. 그래도 답을 안 하면 그 사람이 갈 데가 없어지는 걸 아니 하게 되네요.
한번 그 역할이 되면 바뀌기가 어렵더라고요.
제가 힘들다는 얘기를 꺼내면 그쪽이 당황합니다. 늘 듣던 쪽이 갑자기 말하는 쪽이 되는 셈이군요. 그러면 저도 미안해져서 다시 접게 되고요.
그래서 요즘은 조금씩 섞어봅니다.
크게 말하는 게 아니라 한두 줄씩요. 저도 요새 이렇다고 짧게 붙이는 정도로요. 그러면 그쪽도 제가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못 들어줄 날은 미리 말합니다.
오늘은 여유가 없어서 내일 답하겠다고요. 처음에는 이 말이 매정할까 봐 못 했는데, 해보니까 그쪽도 이해하더라고요. 안 받는 게 아니라 나중에 받는 거니까요.
한 가지 바라는 건 이거예요.
그 사람한테 제가 유일한 자리는 아니었으면 합니다. 여럿이면 저도 어떤 날은 쉴 수 있고, 그쪽도 한 사람이 없다고 무너지지 않겠지요. 그 얘기를 언젠가 해보려고 하는데 아직 못 했네요.
기대는 데를 늘리라는 말이 밀어내는 말처럼 들릴까 봐서요.
기대고 있다는 게 짐만은 아니겠지요.
다만 짐인 날도 분명히 있고요. 오늘 누가 기대오는 게 무거우셨다면, 그날은 내일 답하겠다고 하셔도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