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봉투를 정리하다가 맨 밑에서 종이 한 장이 나왔어요. 오래전 다른 학교에 합격했다는 통지서였지요.
결국 가지 않은 학교였어요. 그런데 이사를 몇 번 하면서도 그 종이를 버리지 못했네요.
종이를 펴놓고 한참 앉아 있었어요.
그때 그 학교에 갔다면 어땠을까 하고요. 다른 도시에서 살았을 거고, 다른 친구들을 만났겠지요. 지금과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상상은 끝없이 이어지더라고요.
이상한 건 고르지 않은 쪽이 늘 더 좋아 보인다는 거예요.
가본 적이 없으니까 거기엔 실망도 없지요. 지금 길의 힘든 점은 다 알지만 그쪽 길의 힘든 점은 모르니까요. 그러니 비교가 공평할 수가 없네요.
가지 않은 길은 늘 맑은 날로만 기억된다. 그 길에 내렸을 비를 우리는 모르니까.
처음엔 이게 후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그렇진 않았어요. 지금 삶이 싫은 건 아니거든요. 그냥 한 번쯤 다른 저를 상상해보고 싶은 거였지요. 창밖을 내다보듯이요.
이 얘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친구도 그런 종이가 있대요.
자기는 회사 입사 제안서래요. 거절한 회사였는데, 그 회사가 나중에 크게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고요. 그 뒤로는 그 종이를 볼 때마다 조금 웃는다고 하더라고요. 고르지 않은 길도 결국 모르는 길이었던 거군요.
종이를 다시 접으면서 지금 길에서 만난 것들을 떠올려봤어요.
이 동네 창가 자리, 오래된 친구 몇 명, 비 오는 날의 단골 빵집 같은 거요. 다른 길로 갔다면 이것들은 없었겠지요. 그쪽에도 좋은 게 있었겠지만 이쪽에도 있었어요.
고르지 않은 길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 같아요.
지금 길을 진지하게 걷고 있으니까 가끔 옆길도 보이는 거겠지요. 그 상상을 너무 무겁게 들 필요는 없어요. 창밖 풍경을 보듯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지금 길로 돌아오면 되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