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을 하나 거절했어요. 그런데 안 된다고 쓰고 나서 끝에 한 줄을 더 붙였네요.
다음에는 꼭 하겠다고요. 닫으면서 문을 반쯤 열어둔 셈이군요.
안 된다는 말만 보내면 너무 차게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뒤에 뭐라도 하나 답니다. 다음에는, 언제 한번, 이런 말들이요. 그걸 붙이면 거절이 좀 부드러워지는 것 같고 저도 덜 미안하고요. 받는 쪽도 아주 잘린 건 아니게 되지요.
거절에 붙는 다음은 약속이 아니라, 지금 닫는 문에 대는 완충재에 가깝다.
문제는 그 다음이 진짜인지를 저도 모른다는 거예요.
쓸 때는 정말 그럴 생각이었고요. 그런데 그 다음이 언제인지는 안 정했습니다. 안 정한 약속은 대개 안 오지요. 그러니 그 한 줄이 나중에 빈말이 되기도 하네요.
받는 쪽에서 그걸 세어두면 좀 곤란해지는걸요.
다음에 하겠다고 했으니 언제 오려나 하고요. 그러다 안 오면 두 번 거절당한 게 되고요. 한 번으로 끝날 걸 제가 길게 만든 셈이군요.
그래서 요즘은 둘 중 하나로 정하게 되네요.
정말 할 거면 다음이 언제인지를 붙여요. 다음 달 어느 쯤이라고 대강이라도 적습니다. 그럴 생각이 아니면 아예 안 붙이고요. 그냥 미안하다고만 하고 끝내는 거고요.
해보니 안 붙이는 쪽이 훨씬 어렵더라고요.
문장이 짧아지면 차가워 보일까 봐 손이 자꾸 뭘 더 쓰려고 합니다. 그 몇 초를 참으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그래도 몇 번 해보니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받더라고요.
대신 미안하다는 말은 꼭 쓰는걸요.
그건 약속이 아니라 마음이라 나중에 빈말이 될 일이 없으니까요. 여지 대신 그걸 남기는 게 서로한테 깔끔한 것 같네요.
여지를 남기는 건 그 사람을 놓기 싫어서인걸요.
나쁜 마음이 아니라 아끼는 쪽에서 나오는 거고요. 오늘 거절하면서 뭘 하나 더 붙이셨다면, 그 다음이 언제인지만 한 번 정해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