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방에 아무것도 안 맡은 애가 하나 있거든. 회비도 안 걷고 문도 안 잠그고 아무것도 안 해.
나는 이게 좀 신경 쓰였다니까. 다들 하나씩은 하고 있는데 혼자 없잖아.
그래서 뭘 하나 맡기려고 했거든. 소외되는 것 같아서.
근데 그 애가 좀 곤란해하더라. 안 하겠다는 건 아닌데 표정이 그랬어.
그때는 왜 저러나 했다니까. 지금은 알겠고.
칼손 쟤는 원래 그런 애예요.
한참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거든. 그 애 옆자리가 늘 비어 있어.
다른 자리는 다 차는데 거기만 하나 비어 있는 거야. 그리고 안 좋은 애가 오면 거기 앉더라.
그때 알았다니까. 그 자리가 비어 있는 게 그 애 역할이었던 거잖아.
일을 맡고 있는 애한테는 못 가거든. 바쁜 사람한테 말 걸기가 어렵잖아.
회비 걷는 애한테 가면 회비 얘기가 나오고 문 잠그는 애한테 가면 그 얘기가 나오는 거고.
아무것도 안 맡은 애는 아무 얘기도 안 붙어 있으니까 가기가 편한 거라니까.
돌부처 비어 있어야 앉지.
지금은 그 애한테 아무것도 안 맡긴다니까. 일부러 비워둬.
애들 앞에서도 쟤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한 번씩 말해준다. 그래야 다들 편하게 가잖아.
그 애도 그걸 아는 것 같더라. 한 번도 뭘 하겠다고 나선 적이 없어.
새로 온 애들도 그 애 옆에 제일 먼저 앉더라. 아무도 안 알려줬는데 그렇게 되잖아.
나는 뭘 모르는 애라서 다 일을 나눠 갖는 게 좋은 건 줄 알았거든. 그게 공평한 거니까.
근데 다 뭘 맡고 있으면 아무한테도 못 가게 되더라. 방에 빈자리가 없어지는 거잖아.
그래서 우리 방에는 아무것도 안 맡은 애가 한 명 있다니까. 그게 제일 큰 역할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