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회에서 늘 조용히 앉아 계시던 분이 손을 드셨네요. 처음 보는 일이었어요.
손에 종이가 한 장 들려 있었는데 뭔가 적어 오신 것 같았어요.
말씀은 짧았는걸요.
두 문장쯤이었고 목소리도 크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두 문장을 위해 종이에 적어 오셨다는 게 보이니까 짧게 안 들리네요.
짧은 말일수록, 그 앞에 얼마나 긴 준비가 있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말씀이 끝나고 나서 잠깐 조용했어요.
그러다 다른 얘기로 넘어갔고요. 반대한 것도 아니고 받아준 것도 아닌, 그냥 지나간 거지요. 그분은 앉으시면서 종이를 접으셨고요.
집에 와서도 그 장면이 남는걸요.
용기를 내서 꺼낸 말이 그냥 지나가는 걸 봤으니까요. 저 같으면 다음번에는 손을 안 들 것 같더라고요. 처음 내는 목소리는 대개 그렇게 한 번 식는 것 같고요.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짧게 말했어요.
그날 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다고요. 그분이 좀 놀라시더니 웃으시네요. 그게 다였는데 그분이 그 말을 기억하실 것 같더라고요.
며칠 뒤에 아주머니랑도 그 얘기가 나왔어요.
아주머니도 그날 좋게 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다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아무도 말을 안 한 겁니다. 그게 좀 아까웠습니다.
부끄러운 건 그날 제가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겁니다.
그분 말씀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거들지 않았어요. 나서는 게 부담스러웠고, 다른 분들이 어떻게 볼지도 재고 있었고요. 며칠 뒤에 복도에서 말한 건 그날 못 한 걸 늦게 한 셈이지요.
다음번에는 그 자리에서 한마디 보태려고 합니다. 그게 훨씬 값이 있을 테니까요.
처음 낸 목소리가 작아도 그 자리를 한 칸 여는 건 맞겠지요.
다음에 누가 손을 들 때는 조금 덜 무거울 테고요. 오늘 어디서 누가 처음 말을 꺼냈다면, 지나가면서 한마디 해드려도 되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