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을 하나 받았습니다. 되는지 안 되는지 바로 안 떠올라서 몇 초 가만히 있었어요.
그 사이에 상대가 먼저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아니라고 하기도 전에요.
말은 아직 안 했는데 그 침묵이 이미 답처럼 읽힌 거네요.
부탁하는 쪽은 거절당할 걸 미리 재고 있으니까요. 잠깐 멈추기만 해도 그게 신호로 잡히는 거지요. 저는 계산 중이었는데 그쪽은 결론으로 받은 셈이군요.
부탁하는 사람은 답보다 먼저 침묵을 읽는다. 그래서 잠깐의 망설임이 거절보다 빨리 도착한다.
그때 제 머릿속은 그 사람 생각이 아니었어요.
이번 주에 뭐가 있었나, 그날 되나 하는 계산이었습니다. 그건 부탁을 진지하게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밖에서는 안 보이는걸요.
그래서 요즘은 그 몇 초를 소리로 채웁니다.
잠깐만, 하고 먼저 말해요. 생각 중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지요. 그것만 해도 상대가 미리 접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애매한 건 그 자리에서 확답을 안 하게 되네요.
저녁에 보고 알려주겠다고 하고요. 급하게 된다고 했다가 못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쪽도 그 편이 계획을 세우기 좋고요.
몇 시간 뒤에 답해도 아무 문제가 없더라고요.
부탁하는 쪽이 원한 건 즉답이 아니라 확실한 답이었으니까요. 제가 혼자 빨리 답해야 한다고 정해두고 있었던 겁니다.
반대 자리에도 서봤어요.
제가 부탁하고 상대가 잠깐 멈췄을 때, 저도 얼른 괜찮다고 해버렸습니다. 거절을 듣기 전에 제가 먼저 접은 거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답할 기회를 잃는걸요.
지금 보면 둘 다 서로를 배려하다가 아무것도 안 된 셈이네요.
잠깐 생각하는 틈이 거절은 아니겠지요.
다만 아무 말 없이 두면 거절처럼 도착하고요. 오늘 누가 부탁을 해왔는데 답이 늦어지셨다면, 잠깐만 하고 한마디만 놓으셔도 되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