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도와주기만 하던 친구가 밤에 부탁을 해왔네요. 처음이었어요.
말하면서 안 되면 괜찮다는 말을 세 번 붙이더라고요.
부탁을 하면서 거절할 길을 먼저 만들어두는 거지요.
안 되면 괜찮다고, 다른 데도 알아보고 있다고요. 그렇게 해두면 제가 안 된다고 해도 서로 안 어색하니까요. 부탁을 잘 안 해본 사람일수록 이 장치를 많이 답니다.
처음 부탁하는 사람은 부탁보다 먼저 물러날 자리를 만든다.
그날 꺼내기까지 며칠은 걸렸을 거예요.
몇 년을 주기만 하던 사람이 받는 쪽으로 서는 건 자세를 바꾸는 일이니까요. 저한테는 한 통의 연락인데 그쪽에는 꽤 큰 일이었겠고요.
저는 그 자리에서 된다고 했는걸요.
재보고 말하는 게 맞는데 이번에는 안 그랬습니다. 잠깐이라도 멈추면 그 친구가 먼저 접을 것 같아서요. 다행히 실제로 되는 일이기도 했고요.
끝나고 나서 그 친구가 고맙다는 말을 길게 하더라고요.
제가 그동안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요. 받는 쪽에 안 서봐서 그 크기를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짧게 받고 다른 얘기로 넘어갔네요.
한 번 해봤으니 다음번에는 덜 걸리겠지요.
그러면 제가 그동안 편하게 부탁했던 것처럼 그쪽도 그렇게 되고요. 한쪽으로 기울어 있던 게 조금 돌아오는 셈이네요.
한 가지 안 한 게 있어요.
진작 말하지 그랬냐고는 안 했습니다. 그 말이 고마운 뜻인 건 아는데 듣는 쪽에는 그동안 왜 참았냐는 물음이 되니까요. 대답할 게 없는 물음이고요.
대신 다음에도 편하게 말하라고만 했습니다. 앞을 보는 말이 뒤를 캐는 말보다 낫겠지요.
처음 부탁해온 사람은 그 말을 하기까지 오래 걸렸을 겁니다.
그러니 재는 티를 안 내는 게 그 자리에서 할 일이겠고요. 오늘 누가 처음 부탁을 해왔다면, 답을 조금 빨리 주셔도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