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이 어느 날 동아리방에서 선언했거든. 오늘 집에 말할 거라고. 주식 하는 거.
그러더니 연습을 하겠대. 우리가 부모님 역할을 하래.
다들 웃었는데 걔 얼굴은 진지하더라. 그래서 나도 웃음 참고 앉았다니까.
불나방 내가 아빠 할게. 나 잘해.
연습을 세 번 했어. 근데 세 번 다 첫 문장이 똑같았거든. "엄마, 화내지 말고 들어."
그 말부터 하니까 우리가 벌써 화난 얼굴이 되더라. 연기인데도.
화내지 말라고 먼저 말하는 건 화낼 일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거잖아. 걔도 세 번째에 그걸 알아챘어.
그래서 연습 멈추고 물어봤어. 뭐가 제일 무섭냐고.
혼나는 게 무서운 게 아니래. 실망한 얼굴을 보는 게 무섭대.
혼나는 건 금방 끝나잖아. 근데 실망한 얼굴은 오래 가거든. 밥 먹을 때마다 생각나고.
그 말 듣고 방이 좀 조용해졌어. 다들 비슷한 얼굴 하나쯤은 떠올린 것 같더라.
돌부처 우리 집은 안 물어봐. 그게 더 무서워.
그날 칼손은 결국 말 못 했어. 다음 날 와서 그러더라. 현관에서 신발 벗다가 포기했대.
나는 그게 실패라고 생각 안 해. 세 번이나 연습했잖아. 그만큼 진지했다는 거고.
말할 준비가 된 날은 따로 있더라. 억지로 당기면 말이 꼬이거든.
생각해보면 걔가 원한 건 허락이 아니었어. 숨기는 게 무거웠던 거야.
집에서 밥 먹을 때마다 뭔가 감추고 있는 느낌. 그게 매일 쌓이니까 내려놓고 싶었던 거라니까.
그러니까 이건 돈 얘기가 아니라 마음 얘기인 거잖아.
너도 집에 말 못 하고 있는 게 있으면 급하게 하지 않아도 돼. 못 한 건 거짓말이 아니라 준비 중인 거라니까.
연습 상대가 필요하면 동아리방 와. 불나방이 아빠 역할은 진짜 잘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