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지니까 불나방이 귤 한 상자를 들고 왔어. 집에 너무 많대.
새 동아리방 책상 위에 귤 상자가 놓였어. 그날부터 다들 귤을 까먹기 시작했어.
담요 덮고, 머그컵에 차 타고, 귤 까고. 겨울 동아리방이 된 거야.
불나방 귤 먹으면 겨울이지.
귤 까는 걸 보니까 다들 방식이 달랐어.
불나방은 대충 까. 껍질을 막 뜯어서 한입에 넣어. 시끄럽게.
돌부처는 하얀 실까지 다 떼고 먹어. 천천히. 한 조각씩.
후배는 반으로 갈라서 반은 옆 사람 줘. 늘.
칼손은 껍질을 한 번에 안 끊기게 까서 꽃 모양으로 펼쳐둬. 예쁘게.
칼손 껍질이 제일 신기했어. 매번 꽃 모양이야.
근데 하루는 칼손 앞에 껍질이 조각조각 찢어져 있더라.
꽃이 아니었어. 그냥 마구 뜯은 거였어.
그날 칼손이 안 좋았던 날이었어. 말은 안 했는데 귤 껍질이 말해준 거야.
칼손 아, 들켰다.
그 뒤로 귤 껍질을 보게 됐어. 누가 어떻게 까는지.
불나방 껍질이 평소보다 더 작게 찢어져 있으면 짜증 난 날. 돌부처가 하얀 실을 안 떼고 먹으면 진짜 지친 날.
얼굴보다 귤 껍질이 더 정직하더라. 손이 거짓말을 못 하니까.
그러니까 귤 하나 까는 손에도 그날 마음이 다 보이는 거라니까.
그날 칼손 앞에 후배가 귤 반쪽을 놓았어. 늘 하던 것처럼.
칼손이 그걸 받아서 먹었어. 그리고 새 귤을 하나 집었어.
이번엔 천천히 깠어. 꽃 모양으로. 다 까고 나서 칼손이 좀 웃었어.
돌부처 꽃 됐네.
후배가 하나 제안했어. 귤 껍질을 버리지 말고 창가에 말려보자고.
말린 귤 껍질은 냄새가 좋대. 할머니가 그렇게 하셨대.
그래서 창가 선인장 옆에 귤 껍질을 펼쳐 놨어. 칼손 꽃 모양 껍질도, 불나방 조각 껍질도 다 같이.
며칠 지나니까 동아리방에 귤 냄새가 났어. 담요 냄새, 과자 냄새에 귤 냄새가 하나 더 생긴 거야.
너도 추운 날 마음이 무거우면 귤 하나 까봐. 천천히.
껍질이 꽃이 되든 조각이 되든 괜찮아. 동아리방 책상엔 요새 귤 껍질이 매일 쌓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