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귤 한 봉지를 샀어요. 올가을 첫 귤이었지요.
저녁에 창가에 앉아 하나를 깠어요. 달고 시원했네요.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 보니 창턱에 껍질이 일곱 개나 쌓여 있었어요.
귤은 이상하게 멈추기가 어려워요.
하나를 다 먹으면 손이 저절로 다음 귤로 가지요. 크기가 작아서 하나쯤 더 먹어도 될 것 같고요. 그렇게 먹다 보면 봉지가 금방 가벼워지더라고요. 배가 부른데도 손은 계속 움직였네요.
창턱에 껍질을 하나씩 올려뒀어요.
껍질을 한 번에 동그랗게 벗기면 꽃잎처럼 펼쳐지지요. 일곱 개가 줄지어 있으니 작은 꽃밭 같았어요. 방 안에 귤 향이 은은하게 퍼졌고요. 손톱 끝은 노랗게 물들어 있었네요.
귤 껍질이 쌓이는 창턱에는,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향이 먼저 와 있다.
어릴 때 할머니 댁에 가면 귤 상자가 있었어요.
겨울이면 늘 방구석에 귤 상자가 놓여 있었지요. 할머니는 귤을 까서 하얀 실까지 다 떼어 제 손에 쥐여주셨어요. 그 하얀 실이 몸에 좋다며 먹으라고 하시는 분도 있었는데, 할머니는 제가 싫어하는 걸 아셨던 거예요.
예전에 친구가 귤 껍질을 말려서 차를 끓여 마신대요.
그 얘기가 생각나서 창턱의 껍질을 그대로 두기로 했어요. 며칠 말려서 따뜻한 물에 우려볼 생각이에요. 버릴 뻔한 껍질이 차가 된다니 조금 신기하지요.
귤은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입으로 알려줘요.
여름엔 수박, 가을 끝엔 귤이지요. 귤을 까기 시작하면 아 이제 추워지는구나 싶더라고요.
다음 날 남은 귤을 몇 개 챙겨 옆집 문 앞에 두었어요.
지난번 정전 날 생일 초를 나눠준 꼬마네 집이었지요. 저녁에 꼬마가 고맙다며 그림 한 장을 들고 왔어요. 귤을 그린 그림이었는데 동그라미 옆에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더라고요. 그 그림은 지금 냉장고 문에 붙어 있어요.
하나만 더 하다 한 봉지를 비우는 저녁도 계절을 제대로 맛본 저녁이겠지요.
오늘은 손톱이 노래질 때까지 귤을 까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