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장 안쪽에 몇 년째 안 꺼낸 그릇이 있었네요. 선물로 받은 거였어요.
꺼내보니 안쪽에 먼지가 얇게 앉아 있더라고요.
받았을 때는 특별한 날에 쓰려고 넣어뒀는걸요.
그런데 그 특별한 날이 안 왔어요. 손님이 오면 쓰려고 했는데 손님도 잘 안 오고요.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아두면 그 물건은 영영 안 나오는 셈이군요.
아껴둔 것은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쓰이지 못한 채 나이만 먹는다.
또 하나는 깨질까 봐서였어요.
좋은 거니까 쓰다가 깨면 아까우니까요. 그래서 매일 쓰는 건 싼 것만 쓰게 되네요. 결국 좋은 건 안전하게 보관되고 하루는 싼 걸로 지나가는 거지요.
며칠 전에 별일도 없는데 꺼냈어요.
혼자 먹는 저녁이었고 반찬도 대단한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릇이 바뀌니까 그 저녁이 좀 달라 보이더라고요. 같은 밥인데요.
그릇은 쓰여야 그릇인 것 같아요.
찬장에 있는 동안은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었던 거고요. 몇 년을 아껴뒀지만 그동안 그게 저한테 해준 건 없는걸요. 꺼낸 그날 저녁 한 번이 그 몇 년보다 낫더라고요.
깨질 걱정은 여전히 좀 있네요.
그래도 안 쓰고 두는 것보다는 쓰다 깨지는 게 나은 것 같아서요. 깨지면 그때 아까워하면 되겠지요. 미리 아까워하느라 몇 년을 안 쓰는 건 좀 아깝고요.
그릇을 꺼낸 김에 몇 개 더 꺼냈어요.
안 쓰던 잔이랑 언젠가 쓰려고 둔 수건 같은 것들요. 다 꺼내놓고 보니 그렇게 대단한 것들도 아니었습니다. 넣어두는 동안에만 특별했던 셈이군요.
지금은 다 매일 쓰고 있습니다. 며칠 지나니까 그냥 제 물건이 됐고요.
아끼는 것과 안 쓰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먼 거리가 있는걸요.
아끼려던 게 어느새 안 쓰는 게 돼 있기도 하고요. 오늘 아끼느라 안 쓰고 계신 게 있으면, 오늘 저녁에 한 번 꺼내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