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손이랑 하교하는데 칼손이 평소랑 다른 방향으로 꺾더라.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집에 간대. 근데 그 길은 두 배는 먼 길이야.
오늘 좀 안 좋아서 먼 길로 가고 싶대.
칼손 같이 가도 돼. 근데 좀 멀어.
그래서 같이 걸었어. 진짜 멀었어. 평소 십오 분 거리를 삼십 분 넘게.
칼손은 천천히 걸었어. 서두르지 않고.
길가 가게도 보고, 고양이도 보고, 하늘도 보고. 불나방처럼 하늘 사진도 한 장 찍었어.
먼 길 중간에 작은 공원이 있었어. 칼손이 거기서 멈췄어.
공원 벤치 앞에 섰어. 앉지는 않고. 그냥 잠깐 서 있었어.
일 분쯤. 그리고 다시 걸었어.
왜 거기서 멈추냐고 물었더니 칼손이 그러더라. 거기서 오늘 거 내려놓는대.
칼손이 설명해줬어. 바로 집에 가면 오늘 안 좋았던 게 그대로 집에 따라 들어간대.
그럼 저녁 먹을 때도, 엄마랑 얘기할 때도 그 기분이 있대. 그게 싫대.
그래서 먼 길로 돌아가면서 조금씩 내려놓는대. 그리고 공원 벤치 앞에서 마지막으로 다 내려놓고 간대.
그러면 집에 도착할 때쯤엔 좀 가벼워진대.
칼손 엄마한테 안 좋은 얼굴 보이기 싫어서.
생각해보니까 불나방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쓰는 거랑 비슷하더라.
불나방은 동아리방 들어가기 전에 계단에서 내려놓고, 칼손은 집에 가기 전에 먼 길에서 내려놓고.
다들 어디 들어가기 전에 마음 고를 시간이 필요한 거라니까. 그 시간을 길로 늘리는 거야.
돌부처 나는 버스 맨 뒷자리에서 내려놔.
그날 칼손 집 앞에서 헤어질 때 칼손 얼굴이 학교에서보다 훨씬 편해 보였어.
너도 집에 바로 가기 무거운 날이면 길을 좀 늘려봐. 벤치 하나 앞에서 멈춰도 되고. 마음 내려놓고 들어가면 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