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뭔가 이상했어요. 늘 그늘을 드리우던 플라타너스가 몸통만 남아 있었지요.
낮에 가지치기를 한 모양이었어요. 길 따라 늘어선 나무들이 다 앙상하게 서 있더라고요.
정류장엔 매일 같은 시간에 버스를 기다리시는 아주머니가 계세요.
그분이 나무를 올려다보시며 웃으셨어요. 이제 어디 서 있어야 하나, 하고요. 여름 내내 그 그늘 아래서 버스를 기다리셨거든요. 웃으셨지만 조금 서운해 보이셨네요.
옆에 계시던 다른 분이 말씀하셨어요.
요즘 뉴스에서도 가로수를 너무 많이 자른다는 얘기가 나온다고요. 간판을 가린다, 전깃줄에 닿는다 해서 자르는데 너무 짧게 잘라 나무가 상한다는 의견도 있대요. 저는 어떻게 자르는 게 맞는지 잘 몰라요. 다만 앙상한 나무가 조금 안쓰러워 보이긴 했지요.
익숙한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그 그늘이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된다.
생각해보면 그 나무 그늘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여름엔 그 아래서 햇볕을 피했고, 비 오는 날엔 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봤지요.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잎이 정류장 바닥에 쌓였고요. 그 풍경이 없어지니 정류장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버스를 기다리며 나무 몸통을 가만히 봤어요.
잘린 자리마다 동그란 단면이 하얗게 드러나 있었지요. 그래도 몸통 군데군데 아직 작은 잎 몇 장이 붙어 있더라고요. 다 잘린 줄 알았는데 남아 있는 게 있었군요.
아주머니가 버스에 오르시며 말씀하셨어요.
봄 되면 또 나겠지, 하고요. 저도 그럴 거라고 대답했지요. 나무는 생각보다 강하니까요.
익숙한 풍경이 바뀌면 서운하지요.
그래도 잘린 가지는 봄이면 다시 돋아나겠지요. 앙상한 나무를 보며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그 자리에 다시 올 그늘을 기다려봐도 괜찮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