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잠깐 멈춰 섰네요. 갈 데가 있었고 늦은 편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날도 거기서 한 번 서더라고요. 늘 같은 자리에서요.
멈추는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게 좀 이상한걸요.
신호등 앞이면 당연한데 그건 아니고요. 그 몇 걸음 앞입니다. 건물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데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매일 지나는 길에도 걸음이 저절로 느려지는 자리가 있다.
오래 서 있는 건 아니에요.
몇 초 하늘을 보거나 숨을 한 번 쉬고 다시 걷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눈치도 못 챌 정도고요. 그런데 그 몇 초가 있고 없고가 도착했을 때 다르더라고요.
늦은 날에는 안 설 것 같은데 그런 날도 섭니다.
오히려 급할수록 그 자리에서 한 번 멈추는 것 같기도 하고요. 몸이 알아서 속도를 한 번 끊어주는 거겠지요. 계속 달리기만 하면 도착해서 숨이 안 가라앉으니까요.
이사하면 그 자리가 바뀌네요.
새 동네에서는 처음 몇 달 동안 멈추는 자리가 없어요. 그러다 어느 날부터 한 군데가 생기고요. 길이 익숙해지는 게 그 자리가 생기는 걸로 표가 나는 셈이군요.
그럼 일부러 정해두면 되나 싶어서 해봤습니다.
여기서 쉬자고 정해놓고 걸으면 그게 잘 안 돼요. 그냥 일정에 하나 더 얹는 게 되고요. 저절로 생긴 자리라야 값을 하는 모양입니다.
누구랑 같이 걸을 때는 그 자리에서 안 섭니다.
말하면서 지나가니까 몸이 그걸 잊는 거겠지요. 그러니 그 몇 초는 혼자 걷는 사람한테만 생기는 자리인 셈이군요. 그래서 혼자 걷는 길을 아주 없애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멈춰 선 몇 초가 그날에서 제일 조용한 대목일 때가 있는걸요.
하루에 그런 게 한 번은 있어야 하는 것 같고요. 오늘 어디선가 저절로 멈추셨다면, 그 자리를 기억해두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