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거실에서 아빠랑 티비를 봤거든. 채널 돌리다가 주식 다큐가 나왔어.
아빠가 그 채널에서 멈추셨어. 나는 옆에서 귤 까면서 같이 봤고.
다큐는 개미들 얘기였어. 여러 사람이 나와서 자기 얘기를 하는 거.
중간쯤에 한 장면이 나왔어. 어떤 아저씨가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서 화면을 보고 있는 장면.
말은 없고 그냥 그 아저씨 뒷모습만 한참 나왔어.
그때 아빠가 리모컨을 드셨어. 채널을 돌리시려는 것 같았어.
근데 안 돌리셨어. 리모컨을 그대로 무릎에 내려놓으셨어. 그리고 끝까지 보셨어.
칼손 돌리고 싶은데 못 돌리는 거, 나 그거 알아.
다큐 끝나고 아빠한테 물어봤어. 아까 왜 채널 돌리려고 하셨냐고.
아빠가 한참 있다가 그러셨어. 옛날 생각이 나서.
그게 다였어. 무슨 옛날인지는 말씀 안 하셨어. 나도 더 안 물어봤고.
근데 그 "옛날 생각"이라는 말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았어. 아빠도 그 뒷모습 같은 밤이 있으셨던 거야.
그때 엄마가 부엌에서 나오시다가 티비를 보셨어. 그리고 아빠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셨어.
아무 말 없이. 그냥 툭.
아빠가 웃으셨어. 엄마도 웃으셨고. 나만 무슨 뜻인지 몰랐어.
나중에 엄마가 귀띔해주셨어. 아빠가 오래전에 힘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그 다큐 속 아저씨 같았대.
돌부처 어깨 툭이 제일 큰 말이네.
다음 날 동아리방에서 그 얘기를 했어. 다들 조용히 들었어.
불나방이 그러더라. 어른들도 다 그런 밤이 있었구나, 하고.
나는 그게 좀 위로가 됐어. 우리가 지금 겪는 거, 아빠도 겪으셨던 거잖아. 그리고 지금 아빠는 거실에서 귤 먹으면서 웃고 계시고.
그러니까 그 밤이 영원하지는 않은 거라니까.
너도 그 뒷모습 같은 밤을 보내고 있으면 이것만 기억해줘. 우리 아빠도 그런 밤이 있으셨는데 지금은 웃으신다는 거.
어깨 툭 쳐줄 사람이 있으면 그 밤도 지나간다니까. 동아리방에서도 툭 쳐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