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사람을 떠올렸는데 얼굴이 흐릿했습니다. 목소리는 남아 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가 안 떠오르더라고요.
그게 좀 미안하더라고요.
기억이 흐려지는 게 왜 미안한가 생각해봤어요.
잊는다는 게 그 사람을 덜 아끼게 됐다는 뜻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오래 붙잡고 있어야 그만큼 소중했던 게 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 흐려지는 걸 제 탓으로 두게 되네요.
잊는 것은 배신이 아니다. 다만 남은 사람이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한동안은 일부러 떠올렸는걸요.
자기 전에 그날들을 되짚어 보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오히려 닳더라고요. 자꾸 꺼내면 기억이 아니라 제가 만든 장면으로 바뀌는 것 같기도 했고요.
다만 다 없어지지는 않네요.
세부는 흐려지는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남아요. 어떤 말투였고 뭘 좋아했는지 같은 건 안 지워지네요. 사진은 흐려져도 인상은 남는 셈이지요.
이상한 건 갑자기 또렷해질 때가 있다는 거군요.
비슷한 냄새를 맡거나 같은 노래를 들으면요. 몇 년 동안 안 떠오르던 게 한 번에 오는걸요. 그럴 때 보면 없어진 게 아니라 어디에 들어가 있었던 거네요.
계속 선명하게 들고 있는 게 잘 아끼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면 지금 사는 게 어려워집니다. 흐려지는 건 제가 계속 살고 있어서 생기는 일이고요. 그 사람도 저한테 그러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붙잡는 대신 하나만 하기로 했어요.
떠오를 때 몇 줄만 적어둡니다. 잘 쓰려고 하지 않고 그날 뭐가 떠올랐는지만요. 그러면 그 장면이 흐려져도 적힌 건 남겠지요.
흐려지는 걸 막지는 못해도 남길 수는 있는 셈이네요.
기억이 흐려지는 게 덜 아껴서가 아닌걸요.
사람이 그렇게 생겨서 그런 거겠지요. 오늘 누가 흐릿해지고 있다는 게 미안하셨다면, 그건 아직 아끼고 계시다는 뜻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