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실망한 거 아니라고요.
그런데 그날 저녁에 그 대화를 혼자 다시 해보고 있더군요. 몇 번을요.
이상한 게 이겁니다.
인정하면 끝날 것 같은데 아니라고 하면 계속 갑니다. 며칠씩 붙들고 있게 되더라고요. 말로 닫아둔 게 안에서 계속 돌아다니는 셈이군요.
인정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름 없이 남아 더 오래 머문다.
왜 아니라고 했나 생각해보면 겁 쪽입니다.
실망했다고 말하면 그 사람을 탓하는 게 되잖아요. 그러면 사이가 어색해지고요. 그게 싫어서 미리 아니라고 해둔 겁니다. 관계를 지키려고 감정을 접은 셈이지요.
또 하나는 이겁니다.
실망했다는 건 제가 기대하고 있었다는 뜻이잖아요. 기대한 걸 들키는 게 좀 부끄럽습니다. 저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싶어지고요. 그래서 감정보다 기대 쪽을 먼저 감추게 되는걸요.
한동안은 실망과 미움을 붙여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좀 다르더라고요. 미움은 그 사람을 밀어내는 쪽이고 실망은 아직 기대가 남아 있는 쪽입니다. 아무 기대도 없으면 실망도 안 하겠지요. 그러니 실망은 오히려 아직 그 사람 자리가 있다는 표시인 셈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혼자라도 말해봅니다.
나 그거 좀 실망했다고요. 소리 내서 한 번 말하면 그게 이름을 갖게 되더군요. 이름이 붙으면 크기도 보입니다. 대개는 생각보다 작아요.
그다음에 그 사람한테 말할지는 따로 정합니다.
말해야 풀리는 일이 있고 말 안 해도 되는 일이 있으니까요. 다만 저한테까지 아니라고 하는 건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건 아무한테도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오늘 아니라고 해놓고 계속 곱씹고 계신다면, 혼자 있을 때 한 번만 인정해보셔도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