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기계가 그렸다는 얘기가 나온 저녁에 그림 그리는 친구가 말수가 줄더라고요. 저는 그 침묵이 오래 남았어요.
보여주던 화면을 슬그머니 덮었습니다. 아무도 뭐라고 안 했는데도요.
뉴스에서 그 얘기가 나올 때는 대개 신기하다는 쪽으로 다뤄집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에게는 신기한 일이 아니었죠.
그 사람은 이미 자기 일에서 그걸 겪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남의 화제와 내 생활이 같은 사건일 때 표정이 저렇게 굳는걸요. 저는 그 차이를 그날 봤어요.
남의 불행은 이야기가 되고, 내 불행은 하루가 된다.
옆에서 누가 그래도 사람이 그린 게 낫다고 했어요. 좋은 뜻으로 한 말이었겠지요.
그런데 친구는 웃기만 하고 답을 안 했습니다. 낫다 못하다는 얘기가 이미 비교의 자리에 올라온 뒤의 말이니까요. 위로가 되기보다 그 자리를 한 번 더 확인시켜주는 셈이군요.
며칠 뒤에 친구가 먼저 그 얘기를 꺼냈어요. 손이 느려서 걱정이라고요. 그런데 그 말투가 억울하다기보다 지쳐 있는 쪽이더라고요. 화를 낼 상대가 뚜렷하지 않은 일 앞에서 사람은 저렇게 조용히 지치는걸요.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림도 못 그리고 기계도 잘 모르니까요.
다만 저는 오래 앉아 있는 걸 잘하는 사람이라 사람이 무언가를 오래 붙들고 있었다는 건 압니다. 그 시간이 갑자기 값이 달라지는 자리에 서보면 누구든 말이 없어지겠지요. 제가 아는 건 그 정도의 무게뿐인걸요.
그날 결국 그 얘기는 흐지부지 끝났어요. 다들 다른 화제로 넘어갔고요.
저는 친구가 화면을 덮던 손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몰라도 그 손이 무거웠다는 건 알겠더라고요. 요즘 자기 자리가 흔들리는 것 같은 분이 계시다면, 답은 못 드려도 그 얘기를 같이 앉아 듣는 정도는 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