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하던 걸 누가 먼저 해버렸네요. 소식을 보고 한참 앉아 있었네요.
제 메모장을 열어봤는데 아무것도 못 고치고 그냥 닫았어요.
축하한다고 썼어요. 진심이 아닌 건 아니었어요.
다만 쓰는 동안 손이 좀 차갑더라고요. 두 마음이 같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건 하나로 정리가 잘 안 되는걸요.
우리는 남의 성취에 기뻐할 수 있다. 다만 그 기쁨이 자기 자리를 밟고 지나갈 때는 잠시 멈춘다.
억울한 것과는 좀 달랐어요.
그 사람이 뭘 뺏은 것도 아니고 제 걸 본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저보다 먼저 한 거지요. 그런데도 제 안에서는 늦었다는 감각이 제일 크게 왔습니다.
몇 년을 들고만 있었다는 게 그때 한꺼번에 보이는 겁니다.
그다음에 오는 게 자책이네요.
진작 시작했으면, 그때 미루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요. 그런데 그때 못 한 데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그 이유들을 다 지우고 저를 탓하는 건 좀 불공평한걸요.
며칠 지나서 그 사람이 한 걸 제대로 봤는걸요.
보니까 제가 하려던 거랑 같지가 않았어요. 방향이 겹치는 부분이 있을 뿐이고 결이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안 보였던 겁니다. 늦었다는 생각이 앞을 가리고 있었던 셈이군요.
물론 다르다는 걸 알아도 힘이 좀 빠집니다.
혼자만 붙잡고 있을 때는 그게 아무도 안 건드린 자리였는데 이제는 아니게 된걸요. 그 느낌은 사실이고 없앨 수도 없겠지요. 저는 그냥 며칠 두기로 했네요.
메모장은 한동안 못 열었어요.
열면 그때 마음이 같이 올라와서요. 그러다 몇 주 뒤에 다시 열었는데 그때는 좀 담담하더라고요. 몇 줄 고쳤더라고요. 그게 다시 시작한 셈이지요.
늦었다는 마음이 크게 온다는 건 그만큼 오래 그쪽을 보고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관심이 없었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겁니다. 오늘 준비하던 걸 누가 먼저 했다면, 그 허탈함은 그동안 들고 계셨던 무게만큼인걸요.